[시애틀한인로컬칼럼] 아리스토텔레스와 지폐 삼단논법-안상목 회계칼럼
아리스토텔레스(384-322)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 무엇을 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내재가치가 존재해야 하고, 그것의 양이 희소해야 한다. 그는 다른 조건도 말했지만, 그것들은 뻔하기 때문에 논의할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재가치와 희소성이며,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물품은 철, 동, 은, 금 또는 그것들을 중심으로 만든 합금이었다.
내재가치란, 누가 “이것의 가치를 얼마다”고 규정하지 않아도 그 자체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가치를 말한다. 현물의 내재가치의 크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거기에 내재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이것을 되팔 기회가 없어도 누군가는 이것을 살 것인가” 물어보면 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사는 사람은 오로지 되팔기 위해 사고 있으므로 비트코인에는 내재가치가 없다. 그 속에 누군가가 내재가치를 본다면, 그것은 “되팔 수 없어도 이것을 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아무도 어음이나 지폐, 즉 어음화폐를 몰랐다. 어음은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하고, 서양에서는기원후 1세기 로마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어음이 실크로드를 타고 서방에 전해지는 데 약 200년이 걸렸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지폐는 그보다 수백년 내지 천년 후세인 송나라 또는 당나라에서 처음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견해는 수시로 바뀌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기원전 4세기에 지폐를 상상한다는 것은 완전 불가능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지폐를 보여준다면, 그는 아마 “이것은 화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할 것이다. 어음을 모르는 사람은 지폐를 현물로 볼 것이고, 현물로서의 지폐에는 아무런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도 2,400년 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지폐를 현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지난 주 칼럼(622그레그 맨큐의 화폐발행이익)에서 본 바, 이름 높은 경제학자도 그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지폐를 어음으로 보면, 지폐의 내재가치는 지폐의 발행으로 인하여 발행기관이 지게 되는 부채의 금액과 같다. 어음의 발행자가 부실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폐의 발행기관이 부실하면 그 지폐의 가치는 흔들린다. 이를 삼단논법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폐 삼단논법)
대명제: 어음의 가치는 액면금액과 발행자의 신용에 달려 있다.
소명제: 지폐는 어음이다.
결론: 지폐의 가치는 액면금액과 발행국의 신용에 달려 있다.
위의 논법 중 대명제는 어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반대하지 않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이다. 소명제는, 세계 금융계 지도자들이 누누히 말하고 있고, 각국의 지폐 발행에 관한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고, 지폐 위에 그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지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장부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즉, 저 삼단논법 속의 대명제와 소명제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위 삼단논법 속의 소명제 “지폐는 어음이다” 하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은, 이상하게도, 지폐에는 내재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지페의 내재가치 유무를 생각할 때마다 위 삼단논법의 대명제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또는 지폐가 어음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어음이라고 하면서도 지폐의 내재가치를 생각할 때는 갑자기 지폐를 물건으로 보게 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깊고 넓은 지적 유산을 남겼으므로, 지금보다 더욱 먼 후세까지 존경 받을 인물이다. 위의 삼단논법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발한 것이다. 저렇게 석 줄로 된 논리가 성립되는 경우와 성립되지 않는 경우를 구분하는 방법이 논리학 교과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그 설명을 시작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먼 후세의 인쇄술을 몰랐듯이, 먼 후세의 어음화폐도 당연히 몰랐다. 어음화폐를 몰랐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위의 삼단논법에 보이는 바, 오늘날의 지폐 제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발행국 정부 재정의 부실화” 뿐이다. 미국은 때때로 정부 재정의 부실화를 향해 미친 듯이 치닫는다. 2017년 12월의 감세법이 그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자원이 풍부하고 그 자원을 지킬 제도와 수단이 충분하여 쉽사리 흔들리지 않겠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경제를 움직이는 지도층이 예를 들어 위 삼단논법 같은 것을 통하여 돈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된다면, 실책은 줄어들고 미국돈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