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고향 생각”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고향 생각”

인간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그리고 이 고향을 늘 그리워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라는 유행가도 있다. 고향은 갈 수가 있고 가끔 가봐야 고향이다. 고향이 있는데 못가면 그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한국의 경우 남북이 갈려서 사상적,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자유로이 고향을 오갈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다행히 우리 집안은 고향이 남쪽이라서 이런 비극은 겪지 않았다. 고향은 갈 수 있어야 고향이다. 고향을 갈 수 없으면 그것은 하나의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리워만 해도 고향은 고향이다. 고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다. 


학창 시절에 나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그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여 친구를 사귀었는데 친구들 중 상당 수가 고향이 북한이어서 갈 수가 없어 늘 그리워하는 것을 실감했다. 그들 중 일부는 가족 중 일부가 북한에 남아서 살고 있었다. 그들이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늘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나는 많이 보고 느꼈다. 남북의 협상으로 이산 가족을 만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이산 가족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장면은 비극 중에 비극이다. 서로 껴안고 울면서 헤어지는 장면은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산 가족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로 시작하는 이 가요는 듣기만 해도 눈물이 절로 나온다. 나는 소년 시절에 고향 근처에 절간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고작 6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있었는데 그리움을 엄청 느꼈다. 6개월간 독학을 하여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을 해야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절간에 서울에서 고시 공부를 하러 온 선배들이 몇 명 있어서 그 형들이 많이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형들이 모두 머리가 아주 명석하였고 일류 학교를 나온 분들이었다. 


어머니가 떡과 엿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주고 가실 적에 나는 늘 울었다. 아주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몇 달 떨어져 있었는데 왜 그리 헤어짐이 슬펐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보다 공부를 훨씬 못하던 친구가 중학교 모자를 쓰고 고향을 찾아오면 그 모습이 왜 그렇게도 샘이 나고 부러웠는지.... 


6개월 절간에서 공부하고 고등학교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대학 검정고시에도 합격을 하여 시골 촌놈이 서울에 있는 연세대에 진학을 했다. 그 절간에서 공부할 때 고시 공부하는 형들의 도움이 아주 컸다. 입시 문제를 골라서 집중적으로 공부하라고 했는데 많은 문제가 그중에서 나왔다. 그래서 시골뜨기 소년이 고향을 떠나 낯선 서울로 올라와서 미국 신부님의 하우스보이 노릇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 신부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나는 영어를 신부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지금이 나의 영어 실력의 근거가 되었다.

 

“돌아보면 자신의 지나온 길이 보이지만 앞을 보고 걸을 때 가야 했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처 없는 길이었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란 없다. 오직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방법은 늘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꽃이 반드시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생의 봄은 서로 다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 어차피 세월은 흘러갔고 구름은 금세 사라지거나 변화한다. 


바다에게 고향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새는 날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인간은 갈 길이 남아 있을 때 행복한 법이다. 가지 못한 길을 뒤돌아보는 자보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자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사람은 누구나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롭게 살고 싶지만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이 훨씬 더 아름답고 인간적이다. 순조로운 삶은 맛이 없고 멋도 없다.”(루쉰의 <고향> 중에서) 


고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가지고 있다. 고향이 없는 인생이나 짐승은 없다. 이런 아련하고 그리운 고향! 그 고향이 있어서 우리는 그리움도 느끼고 인간적인 사랑도 느낀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위대한 예술 작품이 나오고 노벨 문학 작품도 나온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고향은 늘 외롭고 아련하다. 그러나 그런 고향이없는 인생은 없다. 고향이 있어서 인간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고 미래를 소망하며 꿈을 꾼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향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 본연의 자세이기도 하다. 사람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고향에서 태어나서 그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이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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