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티아 레지나!(2)
<지난 호에 이어>
그곳에 들러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는데 이곳에는 성게가 많이 잡혀서 선교사님 내외분이 우리를 위하여 우니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우니 비빔밥을 비벼주셨는데 열심히 일하고 와서 먹는 밥이라 밥이 더 맛있었지만 우니 비빔밥은 정말로 맛이 있었다.
아이들을 다 씻기고 선물을 준 후 아이들과 가지고 간 공으로 공차기를 하면서 한참을 뛰놀아 주고 나니 기운도 없고 배가 고팠는데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우리는 시장에서 튀긴 치킨을 20마 사서는 이들이 즐겨 먹는 옥수수 버리토에 다른 야채하고 싸주니 작은아이들이 얼마나 잘 먹는지 …
여기사는 아이들의 메뉴는 오직 콩하고 밀가루 또티야가 다였는데 우리가 와서 치킨에 야채까지 말아서 주니 아이들은 그야말로 게눈감추듯 버리토를 먹고 있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나뭇가지 대충 세워놓고 비닐 주은 것으로 얼기설기 올려놓은 곳이거나 아니면 브로크로 담을 쌓고는 지붕은 아예 없었다.
여기는 우기가 없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브로크 방안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브로크 벽들로 쌓인 벽과 벽 사이에 방문도 없이 각 가정의 방들이 있는데 천장은 없어서 하늘로 별이 보이고 작은 방안에는 그로서리 플라스틱 백안에 물건들을 넣고 한없이 쌓고 쌓아서 무엇인가를 하나 꺼내려면 그 그로서리 백을 하나씩 다 열어보아야 할 판이었다.
방 안에 쌓아둔 그로서리 짐 가방 사이를 들쳐 내니 작은 쥐들이 우리의 방문을 알고는 요리조리 도망 다니느라 부산을 떨었다.
오 마이 마이!!!
방으로 들어가려면 아주 작은 부엌을 지나쳐야 하는데 말이 부엌이지 아무것도 없는 살림에 한국 그로서리 가게에서 파는 고기 구워 먹는 부스터 하나에(그것도 형편없이 오래된 것) 너무나 오래 써서 까맣게 변한 프라이팬 하나가 올려있고 그릇이라고는 하도 많이 써서 너덜거리는 플라스틱 접시 몇 개 물론 스푼은 없는 듯했다.
낡은 프라이팬 위에는 언제 구웠는지도 모르는 밀가루로 만든 또띠야가 말라서 딱딱한데 아이들은 우리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기 전 말라 비틀어진 또띠야를 입에 물고 다니며 엄마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살 3살 동생을 돌보던 8살 먹은 콧물을 훌쩍거리던 앤토니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자기가 입에 물고 있던 말라빠진 또띠야를 동생들 입에 물려주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져 왔었다.
이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이제 20살이 겨우 넘은 젊은 부부들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멕시코 정부에서도 인구조사에 포함시키지 않는 멕시코 원주민들로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멕시코인 농장주들의 농장으로 일하러 가서 아침 새벽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 일하고 일인당 하루 6불을 벌어오는데 부부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하고 벌어도 둘이 합쳐도 50불이 안되는 삶이었다.
이곳에 이들이 할 일도 별로 없어서 그나마 이 일이라도 하여야만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야채 농장이나 과일 농장들이었다.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면 이곳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 없이 하루 종일 자기들끼리 놀다가 배가 고프면 다 말라빠진 밀가루 또띠야로 배를 채우고는 하였는데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3일 간은 우리가 엔시나다 시내로 나가서 사온 치킨과 돼지고기 고기와 야채들로 맛있게 요리한 음식들을 먹으니 아이들의 얼굴은 천국을 맛보는 얼굴들이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나가면 오이농장 고추농장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농장주는 멕시코인이거나 미국인들이었다.
이곳의 여자 아이들은 14살 정도만 되면 초경을 하는데 초경이 시작되면 자기가 살던 부모의 집을 떠나 독립을 하면서 결혼을 하는데 결혼이라고 해서 별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던 브로크집 부모집을 떠나서 그 나이의 남자하고 그냥 함께 사는 것인데 물론 살 곳이 마땅치 않으니 주위에서 나뭇가지 몇 개 주워다 비닐로 덮은 텐트가 이들의 집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집들을 들여다보니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다.
14살, 15살 아직도 어린 소년과 소녀가 그냥 합쳐져서 살게 되니 물론 피임방법도 모르니 19살, 20살이 되면 벌써 이 젊은 부부 사이에는 아이들이 서너 명이 생겨서 없는 살림에 먹을 입만 더해진 셈이었다.
이곳에서 여자들이 초경만 하면 무조건 결혼을 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라도 입을 덜기 위함이기도 하고 또한 이유는 이곳 소녀들을 이곳 농장주들이 그냥 놓아두지 않고 몹쓸 장난을 하여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 버림을 받게 되기도 하니 워낙 아는 것이 없고 가진 것들도 없고 이들을 보호해줄 관리체제도 없으니 이들은 자식들이 14세만 되면 무조건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어린 아이들이, 소년 소녀가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고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자기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먹이려고 하루 임금 6불에 구입한 밀가루를 반죽하여 또띠야를 구워서 콩에 싸 먹는 게 전부인 삶이다.
몇 년 전 우리 일행이 이곳에 와서 이들의 브로크집을 들여다보면서 기절할뻔했다.
방문이 없으니까 들쥐나 생쥐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방안을 들락거리고 키우는 닭들이나 고양이들이 아무 데나 배설을 하고 이곳저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데 이곳이 사람 사는 집인지 아니면 동물이 사는 곳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부엌이라고 해보았자 아무것도 없었다.
집 안에는 가구라는 게 없었다.
이불을 들치니 어느새 들쥐가 새끼를 쳤는지 아직도 털이 나지 않아 빨간 쥐새끼들이 꾸물대고 있기도 해서 너무나 질겁을 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뭐 그런 것을 보고 놀라느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웃고는 했다.
이번에도 우리 일행은 이들이 살고 있는 브로크 집들을 청소를 시작했는데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그로서리 백들을 들춰내니 생쥐들이 이곳저곳에서 뛰어나와서 질겁을 하고 도망 다니는 우리들의 모습이 우습다고 이곳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어대기도 했는데 워낙에 쥐를 무서워하는 우리는 정말 다짐을 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그래도 이런 브로크방 안에서 사는 가족들은 나은 편이었다.
어떤 가족들은 아예 나뭇가지 몇 개 세우고 사는데 천막 안의 친가족들은 사막의 밤 기온을 어떻게 버틸까?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이곳의 아이들은 잔디밭도 아니고 거친 돌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마당에서 맨발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놀고 있는데 그야말로 돌부리에 넘어지거나 날카로운 돌 끝에 찔리면 어떻게 하지 염려가 되었다.
이들은 멕시코 주민들로 인정이 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주민들이 받는 작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이곳에 와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 내외가 이들의 베네핏을 위하여 멕시코 정부와 협의를 한다고 해서 우리 일행은 주머니를 다 털어서 이들을 돕는 데 비용으로 써 달라고 내놓았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을 일으키듯이 나의 작은 힘이 우리의 작은 힘이 모여서 큰 힘이 되는 그래서 우리도 저도 함께 걸어가며 행복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