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곡비(Keener) 2
<지난 호에 이어>
우리 모두 이곳으로 올라오기 전 약속을 했다.
죽은 고객인 00가 하도 말을 안 들어 먹었으니 얄미워서라도 울지 말자고!
우리가 이끄는 대로 쫓아왔으면 지금쯤 중독증에서도 벗어나고 제대로 된 아파트에서 좀 더 오래살수가 있었을 텐데….
우리가 열심히 도우려고 00를 제대로 바로 살게 세워보려고 하였지만 우리의 노력뿐이었지 중독이 심한 00를 구제할 수는 없었다.
늘 약에 취해 휘적거리며 시애틀 다운타운과 퀸앤지역을 헤매던 00.
비가오던 눈이 오던 거의 신발도 어디다 벗어버린 체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헤매던 00였다. 언젠가 이친구가 나를 찾아 사무실에 왔는데 옷은 비에 다 젖어서 빗물이 뚝뚝 흐르고 다 헤어진 신발에는 양말도 안신은채.
언젠가는 내가 다른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다보니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00는 그 비를 다 맞으며 휘적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시 00가 있는 자리로 뛰어가 내가 늘 메고 다니는 백팩 안에 항상 여분으로 갖고 다니는 털모자(이 털모자는 내가 하는 일을 돕고 싶어 하는 린우드에 사는 한 자매가 예쁜 털실을 사다가 떠준 것들)를 꺼내어서는 00에게 씌워주는데 00는 너무 심하게 코케인에 취해서 자기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어도 누군지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떠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자 아예 모자를 씌워주는 내게 몸을 맡긴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00는 휘청거리며 겨우 발을 내딛으며 한발 한발 걷고 있었다...
남자인 00는 보통남자들과 비교해볼 때에 별로 크지 않은 키에 몸집이 아주 가냘픈 사람이었다.
몸이 작아서인지 이 친구가 휘적거리며 다운타운거리를 헤매고 다니면 다른 홈리스 고객들보다도 더 처량하고 마음이 아팠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가냘픈 체격에 어릴 때 너무 못 먹고 자라서 키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서…
우리 네 사람은 블루박스의 재가 바람결에 따라 다 날아간 뒤에도 모두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차가운 태평양 바다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 우리 네 사람은 퀸앤 꼭대기에서 바람결에 흩어지는 00의 재를 바라보며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바람에 실려 저 멀리 떠나가는 재를 보내며 울고들 있었다.
마치 우리의 고객이었던 5피트 3인치의 가냘픈 홈리스 남자의 몸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으며…
한사람의 생명이 이 작은 박스에 재가 되었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정신 차려야지! 라고 생각을 하고는 차를 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우리 넷은 숙연한 분위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각자의 사무실 자리로 돌아갔는데 나는 내사무실에서 00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메모를 찾아들며 또다시 울고 있었다.
내 울음소리가 옆의 직원에게 들릴까봐 사무실 문을 닫아걸고는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아하! 난 이다지 왜 눈물이 많은가.
친하게 지내는 아이리시 친구가 있었다.
오랫동안 친구이다 보니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일들이 많은데 이 친구와 나는 둘이 좋아서 신나게 얘기를 나누다가도 슬픈 얘기만 조금만 나오면 눈자위가 빨갛게 되어지며 눈물이 글썽거리고 급기야는 둘 다 훌쩍거리며 울고는 했다.
우리 둘이는 남의 집에 고통스러운 얘기를 들으면서도 눈시울이 빨갛게 되어지고 인터넷에 나오는 불쌍한 동물들이 이야기에도 가슴이 아파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아니 그 사람은 지금 몸이 아프다는데 아직 부양해야할 아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걱정이야!
사실이 아닌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도 슬픈 내용이 나오면 우리 두 사람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이 친구도 나도 되도록이면 장례식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언젠가 우리 선배동료가 암치료를 오래 받다가 돌아가신 장례식에 함께 가서는 이 친구와 내가 그 장례식에 상주가 된 것처럼 눈물을 흘려서 나중에는 사람들이 저 동양여자하고 금발의 아이리시 여자는 도대체 죽은 남자하고 어떻게 된 사이인거지? 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우리하고 죽은 사람하고 무슨 연결이라도 된 줄로 생각들을 하고는 했다.
아이리시인인 내 친구하고 나는 우리의 눈물샘에 대해서 한참을 얘기를 나누며 아무래도 너와 나는 아르바이트로 Keener가 되어보자고 했다.
Keener는 무엇인가하면 아일랜드에서는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장례식에 당연히 울어주는 사람들을 청빙을 하는데 울어주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조금 들만한 여자들로 키너들은 장례식의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들로 그분들 특유의 구성지고 슬픈 가락의 울음으로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을 함께 울리면서 모든 참여한 사람들을 슬픈 마음으로 동참시키는 일이 키너들의 일이었단다.
친구와 나는 너무나 쉽게 잘 울고 눈물이 많으니까는 우리는 부업으로 울어주는 일을 하자면서 어디서 광고를 할까 인터넷에 올릴까?
아니면 샤핑몰에 가서 광고판 들고 서있을까?
우리 둘이 키너로 일을 하면 우리 돈 버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의기투합을 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대리곡사가 있었는데 한자로는 곡비라고 불렀다.
곡비들은 상갓집에 가서 대신 울어주고 품삯을 받는데 옛날에는 교통이 불편하니까 상을 치르는데 보통 7일장이 보통이었으니 7일 동안 상주들이 지속적으로 울고 상가를 지키는 일들이 쉽지 않으니까 곡비를 고용을 해서 문상객들이 올 때마다 상주들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업으로 밥을 먹고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누군가가 돌아가셔도 직접사람들이 가서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곡비들은 예전에는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상주들이 매일 문상객들이 올 때마다 운다는 일이 쉽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울음을 울어주고 곡비들이 우는 울음으로 땅이 꺼지고 까무러칠 듯이 울어대는 곡소리에 이승에는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이 하나도 없었다는 곡비 이야기를 내 아일랜드 친구와 함께 애기를 나누며 너와 나는 부업으로 곡비를 하자구 얘기를 했었다.
오늘 퀸앤 꼭대기에서 태평양 바닷바람에 이승에서의 삶을 전혀 행복함이 없이 아프게 살다간 내 젊은 홈리스 고객 00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미어지게 슬픔이 밀려온다.
너무 불쌍해서!
너무 안 되어서!
그 친구가 살다간 48살 인생이 너무나 가여워서 소리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빗물처럼 내리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