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산 이야기] 눈부신 에메랄드빛의 '레이크 22'
서북미 지역에 펼쳐진 아름다운 산행지들은 수천 곳이 되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거나 비포장길이 자갈과 진흙 길이기도 하고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먼 길까지 달려가서도 실망하게 될 때가 있다.
타이어가 진흙에 덮여 돌아와 세차하다 보면 ‘이 사람은 대체 어디를 다녀왔길래 차가 이 모양인가?’ 하는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본격적인 등산을 하는 산악인이 되려면 SUV나 밴 또는 트럭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중 가는 길은 조금 멀지만, 자동차에 흙을 전혀 묻히지 않고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바로 '레이크 22(Lake 22)'이다.
늦가을의 꼬리가 보이면 눈이 쌓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6월부터 단풍이 드는 늦가을까지 무난히 다녀올 수 있는 아름다운 등산로이다. 정상에는 높고 거대한 돌산이 아직 녹지 않은 여름눈을 품고 병풍처럼 둘려 있으며 알파인 호수가 눈부신 에메랄드빛을 띠며 자리 잡고 있는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난이도는 중급 정도로 왕복 5.4마일의 짧은 구간이지만 볼거리만큼은 많다. 야생화와 피톤치드 내음 속에 걷기가 황홀한가 하면, 약간 흐린 날은 구름이 산 중턱을 휘어 감고 있어서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은 천국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활엽수와 단풍나무에 물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의 자연 풍광이 극치를 이루는 것은 이곳을 산행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함이다. 겨울에는 스노우 슈잉을 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등 일 년 내내 발길이 끊기지 않는 것을 보아도 인기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아침에 간단한 점심을 준비하여 떠나면 이른 오후에 하산할 수 있는 코스이지만, 알파인 호수 한 바퀴를 나무다리와 돌길 위를 걸으며 사색을 하다 보면 해가 저무는 줄 모르고 앉아 있고 싶은 곳이 '레이크 22'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