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사]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1

전문가 칼럼

[안상목회계사]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1

지난주 칼럼(801호)에서 본 마르크스의 자본관은 노동가치설에 근본을 두고 있다. 그의 자본관이 그릇된 것은 그의 노동가치설이 낭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가치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1723-1790)의 생각은 그다지 황당하지 않다. 스미스의 생각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어떤 물품의 가치는 “저것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벌기 위해 필요한 노동의 시간”으로 계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시간은 가치의 척도가 된다. 

2. 아주 단순한 것들만 생산되던 물물교환 시대에는 물건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비율이 곧 두 물건 사이의 교환 비율이 될 수도 있었다. 

3. 아담 스미스가 활동하는 시대(18세기 후반)에는 생산에 동원된 재본재의 비중이 업체마다 다르므로, (1)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시간만의 비율로 생산물의 가치가 비교될 수는 없다.


위 줄 친 부분에 대하여, 리카르도(1772-1823)는 “자본재도 노동시간으로 환산할 수 있으므로, 결국 모든 생산물은 노동시간으로 환산할 수 있다” (2)고하여 위의 2와 3을 통합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논의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위 아담 스미스의 3번 속에 있는 “비교”라는 단어다. 리카르도는 무역거래가 일어나는 이유를 계산으표 표현하여 “비교우위설”을 주장한 경제학자다. 


이 문단의 줄친 (2)는 가치의 비교를 위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던 도중에 사용된 명제이며, 그 말 그대로가 성립하자면 비교 대상의 두 가지에게 아래의 여러 가지를 포함한 수많은 조건이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 


시장 적합성 또는 필요성(3). 이것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반박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제기되는 소재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다음 주에 논한다.) 근년에 누가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게 “토마스 에디슨(1847-1931)과 니콜라 테슬라(1856-1943) 중 누가 더 큰 일을 해내었는가”고 물었다. 


머스크의 답은 에디슨이었고, 그 이유는 발명품들의 시장 적합성이었다. 그 말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 시장적합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틀림없다. 시장적합성을 마르크스의 말로 바꾸면 “필요성”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요지는 필요한 것만 생산하고 남는 시간에는 노동자들이 쉬고 더 높은 수준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차이는 그 필요성을 시장이 결정하느냐 정부가 결정하느냐 뿐이다. 


생산체제(4). 칼럼 793호부터 7개의 칼럼에서 면밀히 따져본바, 본토 중국 헌법 제6조에서 말하는 ‘안로분배’에는 인간 자본이 무시되어 있다. 인간 자본을 존중하지 않으면 양질의 인재를 확보할 수 없고, 생산성을 올릴 수 없고, 높은 가치를 생산할 수 없다. 


다른 예를 들면, 마르크스에게는 공포를 준 산업혁명 자체가 생산체제의 변화였다. 마르크스는 분배의 문제를 목격하고는 그 원인을 생산체제에서 찾았고, 애써 이루어진 문명을 “지나친 문명”이라 보고는 생산력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산의 문제와 분배의 문제를 따로따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은 앞서고 발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국방력과 질서(5). 국방력과 질서와 생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공자도 국가를 버티는 세 개의 기둥을 질서(信), 경제(食), 국방(兵)으로 보았고, 플라톤도 이상 국가의 국민을 통치 담당, 국방 담당, 생산 담당으로 나누어 파악했고, 아담 스미스도 국방과 질서가 보장되어야만 경제가 융성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공짜로 주어지는 기술(6)도 가치의 근원이 된다. 인간 자본을 쌓으려면 기술을 익혀야 하고, 기술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축적된 인간 자본은 시간으로 환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익히려 한 그 ‘기술’ 자체는 때때로 아무런 시간의 소모 없이 그냥 주어져 있다. 


쉬운 예로, 누구에게나 공짜로 주어져 있는 인터넷 같은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도 단순한 기술이 공짜로 주어져 있었다. 예를 들면, 배와 수레를 만드는 방법 같은 것이다. 더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농사 기술도 그러한 것이었다. 


이러한 진실을 참작하면, 아담 스미스의 생각 2번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즉, 노동력만으로 그 무엇이 생산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지 의심스럽다. 지리적 근접성(7)도 가치의 근원이 된다. 예를 들면, 암염이나 넓은 해안이 가까이에 있으면 소금 만들기가 쉽고, 인력 소요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수운이 가능한 장소가 아니면 제철소를 만들 수 없고, 물이 없는 땅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행운 또는 불운(8)도 가치의 근원이 된다. 19세기에 금을 캐러 간 사람 중에는 떼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알거지가 된 사람도 있다. 


리카르도의 줄 친 (2)는 줄 친 (3)에서 (8)까지와 아직도 언급되지 않은 것들이 동일한 상태의 어떤 두 가지 물품을 비교하기 위해 말해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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