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산 이야기] 만리장성에 오르다

전문가 칼럼

[김수영의 산 이야기] 만리장성에 오르다

언제인가는 꼭 한번 오르겠다는 기다림도 있었지만, 몽골 출신 가이드의 만리장성 도착 안내가 나오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이어 기대에 찬 사람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초입에서 구름떼처럼 앞을 다투며 오르던 사람들이 첫 망루에 도착하기도 전에 걷기보다는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광객 가운데 절반은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물을 마시며 앉아 휴식을 취하기고 하고 아예 포기하고 뒤돌아 가는 모습들을 뒤로 하고 45도 오름길을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10호, 11호, 12호 그리고 마지막 망루에 도착하였다.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회색 돌계단은 높이가 거의 40센티미터가 되는 것도 있지만 갑자기 15센티미터로 낮아지는 등 들쭉날쭉해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딛고 가는 한발 한발에 집중하라는 뜻이 담긴 것일까? 아니면 강약의 높고 낮음의 리듬을 주며 예술적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마오쩌뚱의 비문을 보며 영어로는 'No pain no gain, admirable people must overcome difficulties'로 번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한참을 용의 등처럼 구불거리는 돌계단을 올라 꼭짓점을 찍고 기쁨을 함께할 사람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오면서 시애틀하이킹클럽 멤버들을 만나는 순간 산악인들의 내공을 볼 수 있었다.


시간만 여유로웠다면 세 번 정도 오르내리며 역사의 현장과 주변 풍광을 꼼꼼히 살펴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다.

팔달정 정상에서 산 아래 능선을 내려다보니 바로 몽골이 보였다. 왠지 저 멀리 초원에서 하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징기스칸의 기마행렬이 보일 것 같아 좌우로 살펴보기도 했다.

하산길은 올라 온 계단이 아닌 왼쪽의 13, 14호 포구를 지나는 돌계단이었고 경사가 60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내리막 계단이었다.


잠시 현기증이 나기도 하였지만, 배에 힘을 주어 심호흡을 하고 그 사이에 놓칠세라 세월의 자욱들이 묻어 있는 성곽의 문양과 벽돌과 바위틈 사이로 풋풋이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러면서도 이 크고 무거운 돌덩이들을 어떻게 이 험준한 산맥 위로 들어 나를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 힘든 옛 중국인들의 배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옛날 만리장성 공사에 한 번 들어가면 10명 중 1명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된 이곳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일생을 바친 젊음과 그에 얽힌 수많은 애환이 담긴 러브스토리들이 애잔히 흐르는 양쯔강 물소리에 섞여들리는 듯하였다.


춘추시대에 시작해 진,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지은 6,000km가 넘는 만리장성은 거대했던 나라였음에도 북방의 유목민들이 먹을 것과 여자들을 약탈하여 가는 것을 막아 보기 위해 쌓아 올린 장벽이란다.약탈자와 방어자의 관계가 장벽 사이로 보이고 장성의 안쪽과 밖의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바뀌게 하였던 이 거대하고 엄청난 만리장성의 큰 문은 한 번도 밖에서 열린 적이 없다고 한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생명의 희생을 담은 이 걸작에 불구하고 나라가 내부인들에 의해 허망하게 멸망했다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보고, 느끼고, 담아가면서 나름 서둘러 내려오긴 하였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버스에서 기다리던 화난 일행들의 따가운 시선과 원성 높은 꾸지람을 영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였다.


시애틀로 다시 돌아올 즈음에 우시에 들려 삼국지 시대의 영웅인 유비, 장비, 관우의 시대적 유적을 둘러보고 수많은 대란의 역사 현장을 둘러보기도 한 이번 중국 여행은 살짝 길게 느껴진 9박 11일 일정의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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