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러시아선교교회창립 20주년 기념 예배/(저녁) 기도찬양 페스티벌(극장) (2011년/10/30) (4)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러시아선교교회창립 20주년 기념 예배/(저녁) 기도찬양 페스티벌(극장) (2011년/10/30) (4)

(10/29일/토요일) 10시에 집을 나서서 교회에 와서 온종일을 보냈다. 내일이 교회 창립 20주년으로 사람들이 모두 와서 성전을 예쁘게 꾸미고, 할머니들이 포틀럭으로 음식을 해 오셔서 오찬 파티를 멋있게 잘한다. 모두 꽃과 초콜릿을 사 와서 목사님께 드리고 어떤 농아 할머니는 목사님과 사모님께 1,000루블씩 드렸다. 그 돈은 너무나 귀한 선물이다.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의 사촌 동생 김 권사님은 성전 구석구석에 있던, 먼지가 잔뜩 묻은 조화들을 씻고 새로 곱게 만들어서 적당한 곳에 예쁘게 장식하셨다. 나는 어떤 청년이 인터넷을 연결해주어 그동안의 선교일지와 사진을 올리고 칼럼도 올리면서 하루를 잘 보냈다. 

점심은 러시아 성도들이 주로 할머니들께서 포틀럭으로 음식들을 해 오셔서 내일의 예배를 위해서 찬양 연습을 하는 청년들과 교회 합창단원들이 다 같이 식사하고 깨끗이 청소도 하고 내일 예배를 준비한다. 


여러 사람이 정성껏 가져온 러시아식 사랑의 음식은 같이 즐겁게 먹으니 맛있다. 

저녁에는 초창기의 천사합창단원들이 와서 미역국과 김, 오징어무침 등 사모님이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남자 청년들과 함께 맛있게 들었다. 천사합창단 중에 "나실 제 괴로움"을 부른 나스쨔가 두 살 된 아기를 데리고 남편과 같이 와서 반갑게 사진을 찍고 식사 후에 우리 어머니들에게 다시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가사의 발음도 정확하게 잘 불렀고 감동으로 눈물이 난다. 


이제는 아이들을 네 명씩이나 낳은 엄마도 있고, 모두 모여서 한식으로 김치와 김을 너무 잘 먹으니, 사모님과 목사님이 너무 사랑스러워하시면서 식사 대접을 하신다. 저들도 옛날의 추억을 잊지 못 하리라. 식사 후에 노래 연습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감동을 준다. 김 권사님은 오빠가 고생하면서 저들을 가르쳐서 저들이 지금은 모두 세상에서 귀중한 사람들이 되었다고 하시며 흐느끼신다.


러시아 시골에서 이름도 없이 지낼 수밖에 없던 아이들에게 사례비를 주고 찬송과 한국민요와 애국가를 4절씩 발음도 정확하게 한국어로 가르쳐서 한국과 미국과 세계의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어로 간증도 했는데 얼마나 피나게 배우고 가르치셨겠는가. 온 세계를 돌고 저들의 눈을 열어주고 앞길에 광명을 준 목사님을 저들이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한참 예쁜 14, 15세 소녀 때에 온 세계를 돌고 청와대까지 가서 귀빈 대접을 받은 것은 모두 목사님께서 일심으로 가르치신 덕분이다. 


그 일은 서울 음대를 나오신 김바울 목사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다른 선교사님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또한 그렇게 하신 분도 없다. 힘든 러시아 선교지, 비싼 도시 모스크바에서 목사님은 너무나 훌륭한 선교를 잘하시고, 이제는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새로 많이 모여들고 있어서 새롭게 목회하시니 목회는 지금부터이고 주님께서 이제 새로운 목회의 길로, 영적으로 인도하고 계신 것 같다.


(10/30/주일) 오늘은 모스크바 선교교회 20주년 창립기념일이다. 

아침 8시 30분에 아래층의 통역 따냐 집사님과 함께 모두 교회에 가니 벌써 러시아 할머니들이 나오셔서 교회를 청소하고 계셨다. 모두가 다 바쁘지만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10시에 어제 연습을 하던 청년들이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가 시작됐다. 나는 뒤쪽에 앉아 있는데 내 뒤에는 농아 할머니들이 오셔서 앉고 맨 앞에는 초청받은 신학교 장교 출신 러시아 노 목사님들이 오셔서 앉으셨고 많은 할머니와 성도들로 자리가 꽉 찼다. 


옛날에는 극장을 빌려 큰 성전에서 1,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있었는데 나날이 극장 세가 올라서 이곳 신학교 자리로 옮겨서 예배를 드리니 성도들이 많이 줄었는데 그러나 지금 오시는 성도들이 진짜 이 교회 성도들이고 20년 동안 변함없이 찾아오시는 할머니들이 귀한 성도들로 많은 꽃다발과 초콜릿과 케이크 등을 가지고 오셔서 사무실에 가득 차고 넘친다. 찬양대가 찬양하는데 천사합창단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지만 진짜 교회를 사랑하는 보배들이고 왈로자 부목사님 사모가 끼어서 하는데 왈로자 목사 사모가 혼자 독창도 했는데 날씬하고 예쁘고 너무 잘한다. 


왈로자 목사는 법과대학 학장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가난하여 차도 김 목사님이 준 헌차를 고쳐서 타고 다니는 것이 이 나라 법과대학장의 형편이니 참 알 수가 없는 이상한 나라이다. 왈로자 목사는 군인도 되는데 아직 제대를 못 한 것은 나라에서 아파트를 여태껏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교로 오래 근무를 한 사람은 아파트를 받아야 제대가 되는데 아직 나라에 돈이 없어서 아파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예배 사회를 본 샤샤 목사님은 20년 전부터 신학교를 다녔고 이 교회 부목사가 되었는데 예전에는 키도 크고 굉장히 잘생겼었는데 사모님과 둘이 지금은 살이 많이 찌셨다. 두 분 러시아 부목사님이 계셔서 김 목사님은 모두 맡기고 부흥회를 하시며 돌아다니고 싶다고 하신다. 러시아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오라고 하는데 항공료가 없어서 못 간다고 하신다. 통역도 같이 가야 하니 경비가 배가 되는데 그 경비를 대주지도 않고 오라고만 하는 것이 러시아 교회 실정이다. 


남편도 선교비와 선물을 싸서 와서 설교도 하고 강의를 하는 것이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해서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되어서 지금은 러시아 신학교와 러시아 교회들이 크게 부흥되었다. 샤샤 목사님이 사회를 보고 왈로자 목사님이 기도하고 그의 사모님이 찬양하고 남편이 설교하고 초청받은 러시아 목사님들이 축사하고 나중에 김 목사님이 여러 성도에게 감사의 표창장을 드렸다. 


청소한 할머니, 수화를 통역한 할머니, 모든 자녀를 전도한 할머니, 물질로 봉사한 고려인, 마이크와 앰프 시설을 담당하여 수고한 청년 등 표창을 하고 18년 동안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회를 도운 남편에게도 표창장을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 연합장로교회에서 받은 것으로 교회에 걸어 놓아야 할 것이고 정말 이곳에 아무 사심이 없이 계속 온 남편을 나도 존경한다.


어제저녁에 모처럼 간단하게 샤워를 했는데 다섯 사람이 한 곳 샤워장을 써야 하고 익숙하지 않고 어지러워서 혼났다. 이곳 통역하는 집사님은 우수리스크 김건수 목사님 댁 샤워장에서 넘어져서 병원에 가서 진찰받기도 했고 한 달 동안 아파서 고생하다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나았다고 한다. 목사님은 교회를 세우기 전에 먼저 합창단을 시작하셨고 군부대로 위문하러 가셔서 전도하시면서 신학교와 교회를 세워 수많은 장교를 목사님으로 배출하셔서 모스크바에서 크게 목회를 잘하고 계시는 목사님들이 많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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