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사명(6) -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의미"

전문가 칼럼

[박상원 기드온칼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사명(6) -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의미"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사명(6) -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의미"


고려인들은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다. 집단농장에 세운 초중고 통합 과정이었던 '선봉 중학교'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학교에서 러시아어와 모국어인 한국어로 교육을 받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구소련에서 고려인 200여 명의 노동 영웅이 나왔다. 이는 소수민족 최다수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인구는 0.5%에 불과하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50명의 부호 가운데 7명이 고려인이었다.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991년 12월 26일, 구소련의 붕괴로 고려인들은 다시 벼랑 끝에 내몰린다. 구소련에서 12개 국가로 나뉘게 되는데 러시아를 제외한 중앙아시아 11개국이 민족주의를 내세워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한다. 이로 인해 러시아어만 사용하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재산과 일터를 잃고 유랑자 삶을 산다. 연해주로 돌아간 고려인 사정은 더 심각하다. 국적이 없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고려인은 19세기 말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한민족 디아스포라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선도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예다. 그리고 근면 성실을 토대로 소련의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던 한민족 디아스포라다. 1937년의 정치탄압과 강제이주로 극한 어려움을 겪지만, 다수의 고려인은 이를 극복하고 현지 국가에서 안정적인 터전을 확보했다. 이들은 부모세대로부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 지금도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한민족이다. 이들에게 조국은 하나다.


1864년 조선을 떠나 연해주로 이주할 때, 그리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당할 때, 그들의 조국은 남북이 나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조국을 생각할 때 남과 북을 나누어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에 대한 균등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려인 72% 가 남북통일에 가교 구실을 감당하겠다고 나섰다. 2014년 고려인은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때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 연해주, 평양, 개성, 서울, 부산에 이르는 15,000km '러시아-한반도 종주,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행사를 했다. "유라시아 평화의 길, 한반도 통일의 길"을 지향하는 대륙횡단 및 한반도 종단 랠리 행사를 한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 복음 통일을 위해 대한민국이 함께 해야 할 필수적 협력자이다. 하나님은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유라시아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 먼저 보내셨다. 이는 한반도 복음 통일 이후 중앙아시아를 지나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한민족 대장정 세계선교의 길을 미리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경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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