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샬롬교회 컬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실존 3부
[ 고린도전서 15:44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예수 생명의 실존의 말씀을 통해 보이는 육신의 몸과 보이지 않는 영의 몸에 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말씀을 통해서 영의 사람을 우리의 몸으로, 보이는 육체의 사람을 몸이 입는 옷으로 해석해서 나누었습니다.
[ 마태복음 6:25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말씀의 핵심은 ‘너희의 육체는 썩어질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영의 몸으로만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생활할 때 옷을 입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은 옷이 필요해요. 즉 영의 몸은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핵심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정체성’이에요. 사람들이 소경이 되어 자신들 안의 진정한 영의 몸을 발견하지 못하고 육체의 몸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우리가 보면, “나는 00이다”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자주 등장합니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참 빛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나는 산 떡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년 때 마리아에게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아들이다.” 이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대략 30세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 목수에서 성령이 계시하시는 정체성으로서 사시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부음은 정체성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자신의 출생에 관한 스토리를 얘기하신 적 있으셨어요?
“음… 내가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런 일을 겪었고, 저런 일을 겪었고…” 결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이후에는 철저하게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아들로 존재하셨습니다.
[ 마가복음 1:9~12 ]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절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이제 30살이 되신 요셉의 아들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정체성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이 이렇게 계시한 거예요. 예수님이 30세 이전에는 요셉의 아들로 사셨다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며 아버지의 나라를 전파하신 것과 같이 우리 또한 혈과 육의 지배 아래서 육의 몸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이 오고 난 이후에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런 존재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정체성을 아나요? 그리고 이러한 존재로 세움을 받기 위해 성령의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비유로 들면, 예수님의 30세 이전의 부모는 요셉과 마리아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의 부모는 성령님이세요. 양육자는 성령님이시라는 거예요. 우리의 삶도 이와 똑같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광야로 갔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분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로 가셨던 것은, 혈과 육으로서 존재했던 이전의 나와 영의 몸으로 거한 나를 분리시키고, 이제는 오직 영의 몸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신 거예요. 예수님도, 하물며 예수님도.
우리의 삶에서도 다 이와 같은 신앙의 여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합니까? 바로 구원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라는 것의 본질이 뭐예요? 도대체 구원이라는 것이 뭔가요? 그냥 교회 다니는 거예요?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다 구원인 것입니까?
구원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 생각하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게 구원이에요.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육신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 생각하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을 증언하시고 양육하시는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떨어지면, 바로 우리는 또다시 육신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삼위일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명을 하라고 하면, 막상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말씀의 원형, 본체이십니다, 그는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시는 분이십니다.
[ 요한1서 5:6~8절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또한, 분명 하나님은 일체이십니다. 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삼위를 위격을 가지고 일하시고 사람들에게 삼위로 나타내실까요? 예를 들어 공동체에 굉장히 심성이 착하고 남을 돕길 좋아하는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a 라는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착할까?” 묻는다면 주변에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원래 그래, 천성이 그래”
마치 이처럼 분명 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삼위의 위격과 기질을 가지고서 일을 행하시고 사람들에게 삼위하나님으로 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성품이 원래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이시지만 그분은 혼자 독단적으로 존재하고 독단적으로 일하는 것을 원하시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공동체, 연합하길 좋아하시며 관계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사람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대리자요, 동역자로서 에덴동산에 존재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성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야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모형에 “종” 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야지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없으면 구원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성자로 살기 위해서는 성령이 보증해주시고 증언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자와 성령은 하나입니다. 성령이 있어야 성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인 거예요.
이 시대에는 다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와 성령이 있는 곳에는 성부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세요. 어디서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시나요? 성자와 성령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셨을 때,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거든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신 거예요. 성자와 성령 하나님 안에 임마누엘 하시는 성부 하나님, 이것이 구원의 완전함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구원에 있어서 삼위일체는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4부에서 계속>
하늘 샬롬 교회 haneulshalom(장로회)
김 이스라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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