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쓸쓸함과 겸허함 속에 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자세를 통하여 내적 충실을 이루고자 하는 경건함을 시로 나타낸듯하다. 제목인 가을은 자신의 내적 충실을 기할 수 있는 시간을 나타내었고, 겸허한 모국어는 영혼의 기도를….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은 하나님, 혹은 절대자를 상징한듯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는 가치 있는 이상이나 생각, 혹은 신의 축복, 사랑의 결실 등을…. 

비옥한 시간은 보람되고 알찬 가을의 시간을, 굽이치는 바다는 고뇌와 수난의 인생길을, 그리고 백합의 골짜기는 깨끗하고 찬란한 인생길을…. 마른 나뭇가지는 지극히 외로운 경지를 그린 듯…. 까마귀는 세상과 단절된 절대 고독의 경지를 말한듯하다.

이 시는 모든 것이 생명을 마감하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인 충실을 갈망하는 시인의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가을의 고독감 속에서 좀 더 겸허해진 마음으로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삶의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고 더욱 경건한 삶을 준비하고 다짐하는 내용인듯하다.

나는 원래 시는 잘 모르고 쓸 줄도 모른다. 그냥 읽고 즐기며 감상할 뿐이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쓸쓸하고 고독한 계절이다.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을이면 소위 센티멘탈한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청소년기의 남녀들이 그렇다.

가을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쓸쓸함이 보이는 듯하다. 봄이 여성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다. 화사한 봄보다는 가을이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그래서 생각할 틈을 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가을이 마치 우리네 인생의 동반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는 구절 속에는 세상에 관한 관심과 욕망에서 벗어나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싶은 시인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는듯하다. 그간 온갖 정성을 기울여 여름 내내 화려하게 가꾸었던 잎을 스스로 떨구고 마른 나뭇가지가 된 나목처럼 인간도 모든 욕망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바로 가을임을 밝히고 있다. 

자신의 젊은 날의 열정과 번민을 극복하고 영적 환희의 세계로 뛰어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너무 어려운 시를 감상하고 설명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대학 시절 가을이면 연세대 뒷산으로 들어가 낙엽 위에 벌렁 누워서 가을을 이야기하고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강의 시간도 빼먹고 뒹굴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고 청소년기의 유치한 낭만임을 이야기한 것임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에도 홀로 있지 않고 그냥 세월과 함께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