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추수 감사절에 다시 생각하는 자녀 교육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추수 감사절에 다시 생각하는 자녀 교육

본 칼럼의 애독자께서 이 글을 읽으시는 주말은 애증이 교차하는 주말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신 경우에,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자녀들과 추수 감사절 휴일에 목금토일 긴 연휴를 즐기시며 행복한 가족 시간을 보내셨다면, “애”가 될 것이다. 어떤 다른 가정의 경우에, 바쁘게 보낸 일상 속에서는 그러려니 했는데, 며칠을 집에서 함께 보내니 “아니, 이 녀석이 온종일 전화기만 붙잡고 뒹굴거리네”를 깨닫게 된 부모님들의 마음은 “증”이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 두 감정이 교차하는 가족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땡스기빙의 정신을 살려 고마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려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아? 도대체 아이를 이렇게 온종일 게임만 하도록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하나”로 애꿎은 아내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 좋은 휴일 기간을 망치는 대치 국면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후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더 심하면 휴일 저녁을 같이 나누는 시간마저도 부모나 자식 너나 할 것 없이 식탁 위나 식탁 의자와 허벅지 사이에 모셔둔 전화에서 진동이 느껴지기가 무섭게 전화를 들어 메세지를 확인하는 바람에 공통의 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도 있을 정도이다. 이번 휴일을 보내며, 올 4월엔가 미국 상원의 교육 위원회에서 미국의 공중 보건을 책임지는 직책인 서전 제너럴 비벡 머시가 한 증언에 동의하게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 방면의 최고 기술자들에 의해 고안된 이 미디어들의 대부분은 이것을 사용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최대의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만들어졌다. 전화기 화면을 끊임없이 스크롤 다운해 그림이나 정보를 보면서, 도대체 이건 어떻게 이리 끝이 없어라고 신기해하신 경우가 없으신가? 장사 목적에는 최대로 부합되지만, 공중 보건을 생각하면 사용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생각할 문제이지만, 처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자녀 교육의 큰 틀이 규정된 성경 속의 에베소서 말씀이다: “또 아버지 된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6장 4절).” 이러한 교육 방식은 삼 년 전에 “12가지 삶의 법칙”이라는 책을 출간한 조던 피터슨 교수의 주장과 비슷하다. 


그의 책 다섯 번째 챕터인 “자녀들의 행동으로 인해 당신이 그들을 싫어하게 된다면, 그들이 그런 일들을 못 하게 하세요”가 그것이다. 그의 조언을 살펴보자. 피터슨 교수는, 인간의 천성이 깨끗한 백지의 상태이지만 부모나 사회의 잘못된 교육 등에 의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장 자크 루소 등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멋대로 이고 이기적이다. 


배고프면 밤이 늦어 부모가 곤하게 자더라도 울어 잠을 깨우고, 젖으로 배를 채워야 잠이 든다. 장난감을 움켜쥐고 남과 나누려고 하지 않는 것은 우리네 경험으로도 그리 틀린 관찰이 아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나쁜 행동이 부모의 간섭/훈육으로 고쳐짐이 없이 네 살을 지나면, 습관이 되고 일생 동안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자녀를 옳다 옳다 받아 주며 방치하기보다는 부모가 책임을 느껴 고칠 것은 고치도록 훈계와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자기기의 사용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규칙이다. 피터슨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비현대적이다. 현대의 깨인(?) 부모들이 ‘왜 아이들을 부모의 권위 아래 귀속시켜 마음대로 다루는가?’라는 비난에 다음의 다섯 가지 지켜야 할 사항들을 제시하며 대응한다. 즉, 자녀들을 훈육할 때, 1) 꼭 지켜야 할 사항의 폭을 최소화하라, 2) 최소한의 강제력을 사용하라, 3) 훈육 시 부모가 서로를 도우라, 4) 부모 자신이 성깔이 있고, 화를 내며, 이성을 잃을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자각해야 하며, 5) 부모가 거친 세상에서 자녀의 자애로운 대리인으로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마음으로 자녀를 훈육하면, 비록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 노력하고 그릇된 행동을 못 하게 하며 자녀의 자유를 구속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린 자녀가 그릇된 일 (예를 들어, 식당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뛰어다니며,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고 주지 않는 등의 행동)을 계속하게 되어도 교정해 주지 않으면, 그것이 해도 되는 일로 여기게 되어, 계속되면 습관이 되고, 그러한 자녀는 다른 친구나 선생님,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못 받고 외로워지게 되며, 그러한 상태는 사회에 잘 적응 못 하는 어른으로 크게 되는 요인이 된다. 


잠깐의 평화를 위해 자녀를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또는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나, 자녀와 피곤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비겁한’ 마음에서 훈육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혼을 내서라도 부모가 정당하고 올바른 양심에서 그릇된다고 판단하는 행동은 ‘자녀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즉시 고쳐 줘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모 자신들이 자녀들이 하는 행동으로 그들을 미워하게 되는 그런 행동을 자녀들이 하지 않도록, 즉 ‘선’을 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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