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1)

3개월간 병가를 내어 무릎치료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내 사무실 보이스메일에 69개의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 많은 메시지를 어떻게 다 들어보나? 병가를 가기 전 내 보이스메일에 3달 동안 내가 자리에 없을 거라고 남겼는데도 메시지가 이렇게 많다니... 하기야, 자기들 마음대로지 뭐!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주의 깊게 들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다 지워버릴 수는 없다. 메시지 중에는 급한 내용도 있을 터이고. 이미 석 달이 지나갔는데 그래도 확인해봐야 하니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스피커폰으로 틀어놓고 들으면서... 


중요하고 답을 해주어야 하는 것들은 그때그때 마다 적어놓는데 우리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나하고 함께 일하는 디렉터가 한마디 한다. “레지나 지금 점심시간인데 왜 쉬지 않고 일을 하느냐"라고. 점심시간은 네게 주어진 시간인데 왜 그 시간까지 일을 하느냐면서 자기 생각엔 전화 닫아놓고 쉬면서 식사를 하였으면 한단다. 


나는 건성으로 응, 그렇게 할 거야. 그런데 이 많은 메시지를 정리하려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우니 그렇게 할 수 없다. 어쩌면 디렉터의 생각은 미국 사회 직장생활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정확히 쉬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분리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 


우리 사무실은 우리 부서만 39명의 카운슬러들이 거의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두 시간씩 돌아가면서 건물 일층에 유리로 환하게 보이는 데일리 사무실에서 '그날의 담당 카운슬러(CMOTD)'로 프로그램을 돕고 있다. 


CMOTD가 헤야 할 일은 예약 없이 찾아오는 환자 고객들이 필요한 일들, 그리고 담당 카운슬러들이 특별한 이유로 근무를 못 하거나 결석했을 때 담당 카운슬러 대신 약속 없이 찾아온 고객들의 편리를 도와주는 일이다. 


오랜만에 사무실로 나온 일주일 후에 마침 내가 그날의 담당 카운슬러 차례가 되어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무작정 찾아온 고객들의 노고 사항을 들어주고 있는데 대부분 일들이 매주 이들에게 지급되는 주정부 베네핏들이고 때로는 우울증 때문에 못 견디겠으니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는 하소연이나 밤새 헛것이 보이니 약을 바꾸어야 하지 않은가 등등 조금 다양하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홈리스 고객들의 페이가 되어서 정부가 이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베네핏을 한 달을 4주나 5주로 나누어서 지급한다. 이들에게 정부의 베네핏을 한꺼번에 지급하면 약을 사용한다든지 도박을 한다든지 때로는 힘 있는 동료들에게 빼앗기기도 하니까 돈을 나누어 주고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정부지원금을 찾아가게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물론 월요일에 오는 고객이 많다. 그리고 다른 날에 와서 받아 가는 고객도 있지만 제일 제일 바쁜 날이 월요일이다. 


나는 조금은 한가한 화요일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무조건 찾아온 이들을 도와주고는 근무하던 사무실 문을 칼같이 닫고 12시 30분에 약속이 되어있는 우리 프로그램의 하우징에 사는 내 고객을 만나러 가려고 바로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1층 로비에서 근무하며 고객들의 무기소지 여부를 검사하는 체격이 아주 크고 잘생긴 직원과 마주쳤다. 


그는 백인 청년인데 너무 잘생기고 성품도 좋아서 그리고 컴퓨터 기술이 만능이라 가끔씩 직원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달려와 도와주기도 하는데 아니 그런데 재는 대학도 좋은데 나오고 재능도 있고 잘생긴 금발에 거기에다 성격이 아주 좋은데 왜 사무실 로비에서 일할까? 


어느 날 아들이 있는 나도 부모 된 심정이라 궁금해서 물어보니 자기는 매일 사람들하고 부담 없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 좋고 남에게 간단한 도움을 주며 고정된 자리보다는 7층 건물 전체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고 사무실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지금의 직책이 자기에겐 최고로 적성이 맡는단다. 


그렇구나! 우리 한국 부모님들이 저렇게 잘난 아들, 제대로 갖추어지고 저렇게 핸섬한 아들이 사무실 문지기로 일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사무실 문밖을 나서려고 하는데 키는 겨우 4피트 조금 넘는데 성격이 아주 00 같은 그리고 약에 늘 취해 눈이 벌겋고 얼굴이 빨간 약간은 몸을 비틀거리는 000가 사무실 문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우리 직원 0에게 자기가 어저께 자기에게 지금 되는 돈을 찾으러 왔는데 어제 너무 일이 많아서 못 왔다고 한다. 홈리스 여자 고객으로 다운타운 근처의 숲속에 몇 명이 어우러져 텐트 생활을 한다. 텐트 주위에 제네레이터도 갖다 놓고 전기도 돌리고, 간단한 취사도구도 갖추어 놓고 사는 그리고 대체로 청결하게 다니는 000인데 늘 약에 취해 있다. 


1층 로비 사무실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서려는 나를 직원 0가 부르며 레지나, 어떻게 하지 000가 왔는데 너 재 잘 알지? 얼마나 꼴통인지? 000은 그야말로 뭐든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늘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상대가 누구든 관계치 않는다. 그냥 몸으로 소리로 밀어붙이는데 죽기 살기로 부딪치는 사람들은 아무도 못 막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000가 나를 아주 좋아한다. 나하고 얘기할 때면 수줍은 새색시처럼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진다. 그리고 얼굴엔 사랑스러움이 번진다. 웃기는 일은 000가 나를 자기 아빠와 재혼한 여자로 망상을 한다. 


그래서 매번 나를 만나면 이렇게 얘기한다. "Regina, Tell my dad, I love him. You are lucky to have my dad to be your husband, his are good man." 


이판사판 키가 4피트 겨우 넘는 여자 정신 질환 고객 000의 아버지는 시애틀의 은퇴한 유명한 내과 의사다. 000은 망상증세로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며 살고 있는데 제정신을 갖고 있지 않으니 가족들도 붙잡아 놓을 수도 없어 그냥 지켜보는 중이다. 


가족이 집을 얻어주면 집안에서 불을 내거나 사고를 치기도 하고 밖으로 헤매니 지금은 어디에서 지내는지 확인을 해보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주며 자주 찾아오기도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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