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1)
젊은 시절을 깡패로 살던 L이라는 문제아가 뒤늦게 군에 입대했다. 자기 동생뻘 되는 새파란 고참병들로부터 수없이 매를 맞고 벌(기합)도 받았다. 참다못한 그가 어느 날 주먹을 휘둘렀고 급기야는 영창에 갔다. 군 안에 있는 영창이어서 낮에는 험한 일을 하면서 훈련도 받고 밤에는 청소를 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7시간 정도를 빼고는 몹시 바쁜 일정을 매일 반복했다. 아마 일부러 그렇게 고된 생활을 하도록 일과를 짰을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고, 생각할 틈을 주면 또 엉뚱한 짓(사고)을 할까봐 그렇게 힘들고 바쁜 스케줄을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무슨 여선교회에서 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위로차 기도회를 한다고 7-8명의 여인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주로 군인 장교 부인들로 구성된 선교단체였는데 이중 아주 예쁘고 점잖게 생긴 40대 여인이 L 앞으로 다가왔다. 일대일로 기도를 한다고 그 여인이 손을 내밀었다. L도 얼떨결에 여인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감각이 없었다. 다만 보드라운 여자의 손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호랑이 문신이 새겨진 L의 손둥으로 여인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뜨거운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졌고 여인의 음성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남을 위헤 이렇게 절실하게 울면서 기도를 할 수 있을까? L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하나님을 모르던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여인이 천사로 보였고, 그 여인의 뒤에서 후광까지 일어나 보이는 듯했다. 문제아로, 깡패로 버려진 자신을 이토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확실히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이 여인은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버린 자신을 이 가냘픈 여인이 무슨 힘으로 구해 줄 수 있을까?
어머니의 손보다도 더 작고 가냘픈 여인의 몸에서 어쩌면 이렇게 큰 사랑이 샘솟을 수 있을까? 분명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고 L은 느꼈다. L은 그날 밤에 하나님을 영접했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뜨거운 덩어리가 그의 가습에서 용솟음을 쳤고, 그의 마음속에 평화가 밀려왔다.
그는 출소하고 제대를 한 후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빈민촌과 달동네를 찾아다니며 전도했다.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동기를 간증하였다. 하루에 다섯 집을 방문하면서 전도했다. 어느 때는 험상궂은 가장한테 매를 맞기도 했다.
옛날 같으면 한 주먹에 날려 버릴 수 있지만, 아니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는 참았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외우면서 그는 전도를 계속했다.
출소자들을 찾아서 전도하기도 했다. 사회에서 등을 돌리는 그들을 그는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하나둘 데려오다 보니 70여 명이 되었다. 그들은 서로 싸움질도 하고 행패도 부렸지만 L은 그들을 교화시켰다. 매일 저녁에 집합시켜 놓고 일장 연설을 한 후에 성경을 가르쳤다.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얼음장처럼 차갑던 그들의 가슴이 녹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무허가 판잣집을 크게 짓고 최고 120명까지 수용했다. 교회는 무허가 판잣집이었고 교인은 모두 문제아, 전과범들이었다.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갔다. 한 방에 4명씩 살게 하고 음식은 식당에서 조를 짜서 만들어 먹도록 했다. 동사무소에서 후원을 했고, 독지가들이 헌금을 하여 그럭저럭 굶지는 않고 살아갔다.
그의 교육 내용은 '사랑이 세상을 움직인다.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호랑이 문신이 새겨진 자신의 손등에 떨어진 사랑의 눈물방울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외쳤다. 그는 뒤늦게 결혼을 했다. 청소년 시절에 입고 보기 싫던 계모를 찾아갔다.
친어머니가 가출한 후 20년 이상을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함께 살아 온 계모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내와 함께 계모를 찾아가서 큰절을 했다. 20년 이상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면서 살아온 새어머니야말로 자신을 바꿔 놓은 사람이었다. 사랑과 인내, 그리고 헌신적인 삶이 외면한 아들을 돌아오게 했다.
L목사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마치 좋은 땅에 꽃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L목사는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 작은 꽃씨에서 움이 트고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날을 기약하면서 목회를 한다고 고백한다.
그가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지, 교회를 어디서 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TV 화면에 비친 그의 얼굴은 언뜻 보면 칼자국이 길게 나 있고 험상궂게 보인다. 그러나 1분만 자세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을 발견할 수 있다. 짧게 깎은 그의 머리는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장교 부인의 뜨거운 눈물방울이 그를 변화시켰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