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극(極)과 극(極)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극(極)과 극(極)

지구상에는 남극(南極)과 북극(北極)이 존재한다. 더위의 극은 추위이고 천재(天才)의 극은 천치(天痴)이다. 또 극에는 죽음과 출생이 있으며 식물의 발아(發芽)와 고사(枯死)도 있다. 


그런데 극과 극이 같은 현상을 보일 때도 있다. 서리를 맞으면 호박잎이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까맣게 죽는다. 즉 얼어서 입는 동해(凍害)나 뜨거워서 데서 죽는 열해(熱害)나 현상이 똑같고, 발가락이 얼어서 아픈 거나 데서 아픈 거나 증세는 꼭 같다.


과학기술(科學技術)이 발달하기 전의 표현이지만 소한(小寒) 대한(大寒)의 큰 추위를 동장군(冬將軍)이라 부르고 심한 더위 폭염(暴炎)을 염제(炎帝: 불꽃 염 임금 제)라 부른다. 추위는 장군으로 부른 반면, 더위는 임금(帝)으로 높여 부른다. 추위는 난방을 잘 하고 밖에 나갈 때 두툼한 옷을 입으면 되는데 더위는 옷을 벗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급이 더위가 높다. 


요즘 더위 때문에 한국에서는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4일 우리 미국 우리교회에서 전교인 피크닉이 있었다. 중복(中伏) 하루 전이다. 섭씨 30도의 더위에서 땀을 많이 흘렸었는데 한국의 섭씨 35도~36도의 더위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더위는 습도에 따라 체감온도가 다르다. 


미역을 사다 놓았는데 한국에서는 물이 줄줄 흐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바삭바삭 부서진다. 한국이 고온다습(高溫多濕)한 북태평양 고기압권 내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막히고 땀이 줄줄 흐른다. 냉방기를 틀어 놓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특히 직장에 출근한 젊은 여성은 최고로 노출한 옷을 입는다. 냉방기를 종일 틀어댄다. 냉방기에 여자의 하체(下體)가 노출된다. 그러면 냉방병에 쉽게 걸려 감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불임병(不姙病)과 같은 여성병(女性病)에 걸리기 쉽다.


'삼복더위에 오는 바깥사돈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속담이 있다. 냉방기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식구 모두 벗고 반라(反裸)로 지내는 무더위에 손님이 오면 옷도 입어야 하며 대접도 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나는 시애틀 6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보통 아파트는 2~3층인데 6층이면 최고층이다.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때는 고작 2~3일뿐이다. 냉방기나 선풍기도 물론 없다.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어놓으면 가까운 바다에서 시원한 해풍(海風)이 솔솔 불어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한국의 열대야(熱帶夜)는 참기 어렵다. 낮에 섭씨 35~36도의 더위에 노출된 몸이 밤에도 섭씨 25도 이상의 더위가 계속되니 잠이 올 리가 없다. 서울은 올여름 25여 일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지구의 극중 남극과 북극의 겨울철이 길다. 따라서 냉장고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냉장고를 수입해 간다. 이유는 영하 수십 도로 춥기 때문에 음식이 모두 얼어 냉동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섭씨 2, 3도의 온도를 유지하여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필요한 것이다.


농촌에서 살 때 생각이 난다. 목욕시설이 없던 당시 종일 땀을 흘린 우리들은 저녁이면 들녘의 쌍샘으로 모여 시원하다 못해 추운 지하수로 목욕을 하여 몸을 식혔다. 날이 심히 더운 날이면 쌍샘 지하수도 미지근하게 느껴져 논 한 가운데에 있는 냉천(冷泉)이란 샘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 


땀띠가 나 고생을 할 때 이 샘에 와서 미역 감으면 십중팔구는 완치가 되었다. 소문이 나 여름 한때는 근동(近洞)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친구들과 이 냉천에 와서 목욕을 하였다. 논 가운데 항아리 1개를 묻어 놓았는데 땅속에서 찬 지하수가 콸콸 솟아나 항아리를 채웠다. 


항아리에 띄어 놓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몸에 끼얹으면 너무 차서 소름이 돋아나 더 이상 물을 끼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논을 경유하여 집에 오는 동안 다시 몸이 더워졌다.

집에 오니 식구들 모두 밀대 방석을 바깥마당에 피고 그 위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쑥을 태워 모깃불을 피워 쑥 냄새가 마당에 진동하였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 있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곤 하였다. 원래 천재(天才)와 바보 천치(天痴)는 극과 극이지만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처한 시간과 장소가 다르다는 점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 뉴턴은 보통 사람들 눈에 바보로 보였음 직하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현상이라고 다 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그걸 말하는 것은 천치라고 생각하였다.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천재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었다. 태양(太陽)이 우주(宇宙)의 중심(中心)이고 지구(地球)가 태양(太陽) 주위를 돌고 있다는 태양중심설(Copernican heliocentrism)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해가 떠 지구가 도는 것을 매일 보면서 어찌 바보 천치 같은 말을 하느냐고 비웃었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학설이 정립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바보나 미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발명의 왕 천재 에디슨은 어려서 공부를 너무 못하는 바보 천치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며 쫓겨났다. "당신 아들은 학교에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어 집으로 보냅니다" 라고 쓴 교장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퇴교(退校)하여 집으로 온 에디슨의 손을 잡고 영어 알파벳의 A자부터 가르쳤다.

"이 애야! 이게 A자이다. 따라 해봐!"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지극정성인 어머니의 가르침이 에디슨을 천치에서 천재 발명가가 되게 하였다.  상추씨를 봄에 일찍 뿌렸다. 발아(發芽)하여 커서 야들야들한 상춧잎을 채취해 먹었다. 줄기에서 젖처럼 하얀 진이 나왔다. 점심에 먹었는데 잠이 쏟아져 왔다. 


상추줄기에서 나온 하얀 즙(汁)이 수면제 역할을 했다. 상추는 꽃이 피고 열매를 남기고 고사했다. 상추는 이렇게 극에서 극으로 끝이 났다. 폭염(暴炎)인 염제(炎帝)가 매일 한국을 강타하였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나니 더위도 계절 앞에 힘을 못 쓴다. 극에서 시작하여 극으로 끝난 수면제(睡眠劑)인 상추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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