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머슴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머슴 이야기

나는 농촌(農村)에서 태어나서 농촌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독립유공자이신 할아버지는 선비였기 때문에 농사일을 할 사람이 없어 한 사람의 머슴을 두었다.  


머슴을 둘 때는 계약(契約)을 하였다. 우선 숙식을 제공하고 이불 요와 1년에 입을 의복 세 벌을 해주고, 추석 설 등 명절날은 쉬고 사경(私耕):1년간 일한 삯)은 젊을수록 올라가 상(上)머슴이 벼 두 섬(네 가마)이었다. 사경을 주는 시기는 가을 추수를 다 한 후 지붕을 개초(蓋草)하고 김장이 끝난 뒤이다.

대개 머슴 사는 사람은 집이 매우 가난하고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어려서 기억나는 것은 20대 초반의 총각이 우리 집에 머슴으로 들어 왔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고아(孤兒)인데 고모(姑母)네 집에서 얹혀살았다고 한다. 동리 애들로부터 부모 없는 고아라고 무시를 당해 그것이 한(恨)이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 잘 살아서 한을 갚는다고 결심을 하였다. 그 애를 성실한 청년이라고 할아버지는 칭찬하셨다. 열심히 일하고 받는 사경은 방아 찧어 쌀로 장리(長利)를 놓아 불려갔다. 장리란 봄에 쌀 한가마를 꾸어주면 가을 추수 후에 한가마 반을 받는 변리(이자)를 말 한다. 그 청년(靑年)이 첫해 일해서 받은 사경(私耕)은 벼 2섬(쌀 2가마)이었다. 그 쌀을 장리(長利)놓아 가을에 쌀 3가마 반, 그 다음해는 5가마 ...이렇게 쌀이 늘어 5년 만에 11가마가 되었다. 그 쌀로 논을 샀다. 이렇게 여러 해를 머슴살이 하여 논 서너 마지기를 장만하였다. 그 청년은 검소하고 절약하는 억척스런 생활로 남의 본이 되어 동리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고 마침내 같은 동네에 사는 가난한 노처녀와 결혼(結婚)까지 하여 우리 집에서 독립해 나갔다. 할아버지가 중매해주고 도와주어 할아버지를 수양아버지로 모시고 한 식구처럼 지냈다. 그는 많은 농토를 가진 독농가(篤農家)로 자녀를 잘 교육하여 존경을 받고 살다가 별세했다.


그다음으로 들어온 머슴은 나이가 좀 많은 홀아비인데 일은 잘했지만 사경을 받아가지고는 주막집에 가서 노름(도박)을 하여 일주일도 못가 사경을 모두 탕진하였다. 1년 내내 그 고된 일을 하고 받는 보수인 사경을 한꺼번에 날리고는 실의에 빠져있을 때 할아버지는 몇 번씩 타이르곤 했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해마다 되풀이하였다. 훗날 결혼도 못 하고 여생을 비참하게 살다 객사(客死)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어 집에 오면 동네에서 머슴과 주인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스캔들도 심심찮게 발생하였다. 동네에 사는 한 젊은이가 오랫동안 병으로 앓다가 죽었다. 남편이 앓아누워 있으므로 머슴을 두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30대 초반의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은 남편을 여의고 독수공방으로 쓸쓸한 날을 보내었다. 얼마 뒤 머슴과의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 집 머슴은 더벅머리 노총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주인집 여자는 머슴의 애를 낳았다. 이 사건은 그 옛날 동네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었다.


이북 평안북도 정주에 머슴살이를 하던 한 청년이 있었다. 눈에는 총기가 있고, 동작이 빠르고 부지런하며 매우 총명한 청년이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그는 아침에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려 다시 방에 들여놓았다. 주인은 이 청년이 범상(凡常)치 않음을 알고 머슴으로 썩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경 줄 돈으로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그는 장학생으로 수석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마침내 교장이 되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그가 민족의 독립운동가 이신 조만식(曺晩植)선생님이다. 후에 사람들은 "머슴이 어떻게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됐으며 훗날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성을 다 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씻었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요강을 닦는 겸손(謙遜)과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아량(雅量) 그것이 머슴에서 조만식 선생을 낳게 했던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터지기 몇 해 전의 일이다. 오하이오주의 대농(大農)부호(富豪)인 Worthy Tailor(테일러)씨 농장(農場)에 짐(James)이라 부르는 17살의 거지 소년이 찾아왔다. 농사(農事) 일손이 필요한 때라 곧 그를 머슴으로 고용했다. '짐'은 열심히 농사일을 하며 주인을 섬겼다. 그러나 3년 뒤에 주인은 자기의 외동딸과 '짐'이 서로 열렬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인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거지 머슴애가 감히 천금 같이 귀한 내 딸을 넘보느냐고 몹시 화를 내었다. 그리고는 욕을 심하게 하며 마구 때리고 사경(私耕)은 고사하고 돈 한 푼 안 주고 빈손으로 내쫓아 버렸다. 


'짐'은 눈물을 흘리며 정처 없이 농장을 떠나가고 말았다. '짐'이 농장에서 추방당한 후 3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날 농장주인 테일러는 낡은 창고를 헐다가 우연히 '짐'의 보따리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그 속에 한 권의 책이 들어 있었고 그 책에는 'James Abram Garfield(제임스 가필드)'라는 본명(本名)이 적혀 있었다. 


그가 바로 1881년 당시 20대 미국 대통령이다. 그 동안 '짐'은 주인집 딸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경(私耕)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그 모욕(侮辱)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고학(苦學)으로 공부했다. 마침내 히람대학을 수석(首席)으로 졸업하고. 육군 소장을 거쳐 하원의원에 여덟 번이나 피선(被選)된 후 대통령에 당선되어 백악관 주인이 되었다. 미국의 머슴이 대통령이 된 한 사례(事例)이다. 


머슴살이 하다 얻어맞고 맨몸으로 추방당한 그 한(恨)이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만일 주인 딸을 사랑하며 그냥 그 농장에서 살았다면 '짐'은 20대 미국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농장주인 외동딸은 그 후 상사병(相思病)으로 짐을 찾으며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사망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인생이 덧없음)이란 말이 생각난다.


내가 고향에서 본 머슴은 부모 없는 고아라고 왕따를 당해 그것이 한(恨)이 되어 열심히 일해 독농가가 되어 자녀를 훌륭히 교육하였고, 미국의 머슴은 주인집 딸과 연애한다는 이유로 얻어맞고 쫓겨났다. 그것이 한(恨)이 되어 열심히 공부해 대통령이 되었다.


제일 밑바닥 인간(人間)에서 최고(最高)의 대통령(大統領)이 되기까지 한 맺힘이 없었다면 성공(成功)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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