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박상원 목사 동족 선교 이야기

전문가 칼럼

[박상원 기드온칼럼] 박상원 목사 동족 선교 이야기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왔을까? 한국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모두 중국 사람들이었다. 왜 이렇게들 많이들 오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출입구(백두산 정상에 올라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곳) 앞에서 가이드 형제로부터 입장권을 받았다. 정사각형의 손바닥 1/4만한 크기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 이름이 영문으로 인쇄가 돼있고, 그 밑에 QR코드가 또 있는 게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다 각자의 이름과 QR코드가 된 입장권을 받은 것이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아 그래서 전날 밤에 패스포트를 다 걷었구나…세상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어디를 가고 보고 하는 지를 이미 중국 당국 손아귀에서 감시당하고 추적받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불쾌감이 서서히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거의 떠밀리다시피 해서 15명 정도가 정원인 미니 셔틀(한국의 마을버스만 한)을 타고 정신없이 우로 좌로 급커브가 가져다주는 스릴과 동시에 오는 불편함은 이내 그래, 민족의 영산이라고 하는 백두산 천지를 5년 만에 다시 본다는 생각에, 수료생들은 처음으로 본다는 왕 설렘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댔다. ‘여기까지는 맑았는데 혹시 천지의 정상은 괜찮을까?’ 마지막 걱정은 이미 불과 20여 분 만에 이렇게 쾌청할 수가 있나! 환성이 터졌다. 


백번 와서 두 번 본다는 이곳을 첫 등반에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분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정상 쪽 언덕길로 향했다. 그런데…아니 웬걸! 더 이상 전진이 안 되었다. 꼭 출근길 서울의 지하철의 모습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줄과 내려오는 사람들의 줄이 심하게 정체가 되어서 마음 편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이미 좋은 자리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빼곡하게 막혀 있어서 천지의 모습은 속시원하게 보이질 않았다. 


1997년 처음 보았던 당시의 백두산 천지의 정상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니었다. 허탈함과 불쾌감이 동시에 솟아올랐다. 길들은 수용인원의 초과로 많이 훼손되었고, 흉측한 말뚝 보호대가 길을 따라 쳐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자리를 잡고 비켜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좋은 스팟에는 컴퓨터 출력인쇄기를 설치하고 돈을 받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20여 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힘들지만 저 멀리 길 따라 내려가 사람들이 없는 곳까지 걸어가서 사람들이 비킬 틈을 보다가 겨우 빈틈을 노려 함께 간 동료 몇 분들하고 간신히 몇 컷을 찍었다.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름다움을 될 수 있으면 있는 그대로 두고 감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경이감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호객을 하고 있는 모습에 참으로 실망과 분노가 동시에 경험한 사건이 되었다. 


물론 처음 본 분들이야 백두산과 천지를 한 번에 클린하게 보았다는 성취감과 기쁨은 있었겠지만, 필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비둘기 등을 사고 파는 시장터가 된 것을 보고 분개하신 주님의 마음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참 씁슬하고 화가 났다. 


천지 올라가는 총비용 2차례(입장료+셔틀버스비 해서 한국 돈 5만 원 이상)나 냈다. 그런데 그 천지를 빽빽이 그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계속)


 

 (천지등선주위로 수많은 인파로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사람들을 피해 아래에서 단체사진, 좌우에 큰 고성능카메라 타워가 서 있다_기드온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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