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_이성수칼럼] 호박잎쌈

전문가 칼럼

[미디어_이성수칼럼] 호박잎쌈

서리가 온다는 상강(霜降)이 10월 23일이고 김장을 한다는 동지(冬至)가 11월 7일이다. 10월 20일경 호박 줄기를 뽑고 호박 농사를 마감했다. 호박 줄기에 남아있는 어린 호박순을 채취했다.


호박잎 순을 쌈으로 먹기 위해서이다. 금방 따온 호박순을 살짝 익혀 오늘 점심에 먹었다. 호박순을 쌈으로 먹는 호박은 조선호박뿐이다. 주키니 호박이나 단호박 같은 외래 호박 줄기는 쌈으로 먹지를 못한다. 한번은 외래종 호박순을 먹기 위해 살짝 익혀서 쌈으로 먹었다가 작은 가시가 입안을 마구 쏘아 이내 뱉어버렸다.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온다는 속언(俗言)이 있다. 횡재(橫財)를 할 때 비유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호박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잎은 호박잎쌈으로 먹는다. 상추쌈보다 영양분이 훨씬 많다. 호박 줄기는 껍데기를 벗겨 된장의 건더기로 사용한다. 이것을 넣고 끓인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맛이 좋다. 


줄기에 열리는 애호박은 호박 찌개를 해 먹고 호박전을 부쳐 먹는다. 그리고 늙은 호박은 호박죽, 호박고지떡을 만들어 먹는다. 줄기와 뿌리는 삶아서 호박차로 마신다. 이뇨제(利尿劑)라 몸에 좋다. 정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5월 초 방에서 개량조선애호박 한 그루를 모 부어 싹을 키웠다. 본엽(本葉)이 나올 무렵 간병인 집에 가져다가 키웠다. 간병인이 캐나다로 여행을 가는 바람에 호박모도 같이 따라다니며 키웠다. 본엽이 4~5매로 클 때 집으로 가져다가 텃밭에 정식(定植)하였다. 


그때가 5월 하순이라 늦서리 피해가 있어 비닐봉지를 씌워서 키웠다. 낮에는 30도(℃)를 육박하는 날씨라 비닐 주머니 위에 1달러 동전 크기의 구멍을 뚫어 주면 열사병으로 죽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아파트 1가구당 1평씩 텃밭을 분양해 주어 호박 1그루를 가꾸게 되었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곳에 호박을 심으면 비닐이 햇빛을 받아 더워지고 비닐 주머니가 또한 햇볕을 받아 따뜻해져 생장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잎이 5~6매 나올 때 꼭대기 순을 잘라버린다. 지금 막 크려는 호박이 순을 집는 바람에 더 이상 크지 못하고 그 대신 5~6매의 잎마다 곁순이 나온다. 여러 개의 곁순 중 제일 튼튼한 걸로 2개만 남기고 다른 곁순은 모두 따버린다.


그러면 줄기는 2개, 뿌리는 1개의 호박이 자라게 된다. 잎이 커지고 수세(樹勢)가 왕성할 때 비료를 준다. 어릴 때 빨리 크라고 비료를 듬뿍 주면 오히려 비료의 해를 봐 크지를 못하고 위축한다. 그러므로 첫 비료는 줄기가 2개 뻗어나가고 막 크려는 때에 주어야 한다. 


비료는 속성이고 유기농인 'Miracle_Gro'란 비료를 사다 주면 좋다. 코스트코에 가면 살 수 있다. 기비(基肥)로 계분을 호박심기 전에 미리 준다. 비료를 주면 호박은 날이 갈수록 성장이 빠르고 약속이나 한 듯이 첫 암꽃이 핀다. 첫 암꽃은 따보려야 한다. 대부분 아까워 따버리지 않고 놓아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린 호박이 2개의 애호박을 키우려고 쏟는 에너지가 소모되어 큰 부담이 되고 생장에 지장을 초래한다. 심지어 좀 크다가 역부족으로 저절로 떨어진다. 첫 암꽃을 따버리면 곧바로 두 번째의 암꽃이 핀다. 그 때는 호박도 많이 큰 상태이다. 암 꽃이 각각 1개씩 2개가 핀다.   


만일 최저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벌이 찾아오지 않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 때는 인공수정(人工受精)을 해야 한다. 인공수정은 호박꽃이 활짝 핀 오전 10시경 붓에 수꽃의 꽃가루(花粉)를 묻혀 암꽃 수술에 칠해 주면 된다. 기온이 오르면 벌이 옴으로 인공수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수꽃이 없다면 다른 밭의 수꽃 가루를 빌려오면 된다. 그런데 기온이 올라 벌이 와도 호박이 떨어지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는 호박이 너무 어려서 열매를 맺을 능력이 없거나, 또는 호박이 영양부족이거나,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 영양과잉인 경우가 있다. 호박의 생육 상태를 잘 살펴봐야 한다. 호박잎이 지나치게 크면 영양과잉이고 작으면 영양부족이다.


개량마디호박은 마디마디에 암꽃이 피어 열리는데 호박이 다 열리지 않고 떨어진다. 즉 호박이 영양상태에 따라 맺는 능력을 호박 자신이 모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 능력을 대신해 열매를 솎아주어야 한다. 맺는 호박이 실하고 빛이 엷은 청록색(靑綠色)으로 얼른 보아도 잘 클것 같으면 놓아두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果敢)히 따야한다. 


아깝다고 그냥 놔두면 결국은 떨어지고 만다. 그만큼 호박에게는 영양손실이 된다. 뿌리는 하나고 줄기는 둘이므로 균형(均衡)을 맞추어 각각 1개씩 쌍둥이 호박을 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딸 때는 크기가 똑같은 호박 2개를 따게 된다.


5월에 심은 호박이 6월 중순부터 열려 10월 20일까지 한 줄기에 13개 도합 26개의 예쁜 애호박을 따는 쾌거(快擧)를 올렸다. 이 호박을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먹을 때 보다 딸 때가 더 재미있었다. 호박 한 그루에서 많이 열릴 때는 이틀 마다 두 개씩을 따니 만일 4구루의 호박을 심었다면 8개를 수확하는 셈이다.

     

평소(平素) 가까이 지내는 친지(親知)와 지인(知人)들에게 선사를 했다. 이 개량마디호박은 시중(市中)에서 살 수가 없는 귀(貴)한 것이다.  

"호박을 주어 고맙게 잘 먹겠유~! 어쩜 호박이 그리 예뻐유" 

받는 사람마다 모두 인사를 한다. 


10월 20일 호박을 걷고 생장점 근처의 부드러운 호박순을 따서 살짝 뎁혀 호박잎  쌈을 먹었다. 상추쌈보다 입에서 느끼는 볼륨(volume)감이 컸다. 씨암탉을 잡은 일이 있었다.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 내일 낳을 알이 나오고 앞으로 낳을 수십 개의 작은 알이 닭등안에 박혀 있었다. 


닭이 살아 있으면 알을 계속 낳을 것을 생각하니 아까웠다. 호박도 내일모레면 딸 수 있는 호박부터 10개도 넘는 크고 작은 새끼애호박이 어쩔 수 없는 기후(氣候)로 크지 못해 이 역시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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