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11월 김장하던 날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11월 김장하던 날

늦가을에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다. 된서리가 내린 후로 모든 풀과 작물이 비참하게 죽었는데 오직 무와 배추만은 싱싱하고 푸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본래 무와 배추는 선선한 날씨를 좋아하는 작물로 가을에 자란다. 배추는 잎이 자라 '포기'를 안고 무는 뿌리가 커 '밑동'이 된다. 


높직한 밭두둑에 촘촘하게 씨를 뿌린 무는 자라고 있는 동안 몸이 닿지 않을 정도의 간격으로 솎아주어야 한다. 무는 가장 싫어하는 30도(c) 이상의 늦더위와 전쟁을 하여 만신창이가 되지만 아침저녁으로 생량(生涼)한 기온 덕에 원기를 회복하여 잘 자란다. 결국 더위와 싸워 최후 승리를 거둔다. 


무 밑동은 점점 자라 땅위에 하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서리가 내릴 무렵 하얀 무 밑동은 아가씨 각선미처럼 매끈한 모습을 보인다. 수백 개의 무 밑동은 일렬로 도열한 여학생의 통통한 종아리 같다. 하얀 무 밑동은 농녹색(濃綠色)인 무청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되어 부동자세로 서 있다.  


훈육(生活指導) 선생의 우렁찬 구령 소리가 들려온다. 차려! 열중쉬어! 앞으로 가!....

구령 소리가 떨어지면서 무 밑동은 일사불란하게 동작한다. 검은 흙색과 하얀 무색 그리고 짙은 초록색의 조화는 단조로운 배추와 비교해서 세련미가 훨씬 아름답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에 또래 애들과 초등학교를 파하고 집에 올 때 나는 길 가 무밭에 들어가 제일 큰 무 하나를 뽑았다. 커다란 무는 땅속에 묻혀 있던 부분은 하얗고 땅위에 노출된 부분은 고운 초록색이었다. 그래서 무 이름이 '청(靑)무'이다.


무청을 비틀어 따버리고 입으로 무청이 붙어있던 곳을 물어뜯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나선형으로 술술 잘 벗겨졌다. 희고 깨끗한 무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배처럼 달달한 물이 많지는 않아도 약간 매우면서 달착지근한 물이 침과 함께 입안에 고이고 씹히는 무의 질감이 식욕을 돋아 주었다. 


무서리가 내리면 배추는 몰라보게 포기를 안는다. 이를 '결구(結球)'라 하는데 배춧잎이 속에서 겹겹이 단단하게 쌓여 축구공처럼 된다. 이 결구는 무서리를 맞아야 형성된다. 된서리의 동해(凍害)에 대비하여 널브러진 잎을 짚으로 싸매준다.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진 11월이면 김장이 시작된다. 11월 7일이 김장하라는 입동이다. 결구한 배추를 보니 어린 시절 우리 집 김장하던 기억이 생각났다. 어렵게 살던 시절 식량이 부족했던 때라 김장은 제2의 양식이었다. 우리 집은 배추를 엄청 많이 가꾸고 200포기 이상의 배추로 김장을 담갔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다. 11월 입동 때 김장하는 날은 우리 집 안마당에 배추와 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배추가 많다 보니 이웃끼리 품앗이로 상부상조했다. 우리 집 김장하는 날은 10여 명의 이웃 아주머니들이 분업적으로 일을 맡아 도와주었다.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라 양념 배합을 맨 손으로 하기 때문에 팔까지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묻어 손과 팔이 쓰려 고생하는 걸 보기도 했다. 


절인 배춧잎 사이사이에 양념한 배춧속을 넣으면서 어머니는 시뻘건 배춧속을 손으로 집어 배춧잎에 싸 아! 하고 입을 벌리라고 해 내 입속에 넣어 주셨다. 어제 밤새 황석어젓 고아 새우젓과 같이 양념에 넣어서 그런지 비릿하면서 짭짤하고 맵고 아릿하여 눈물이 날 만큼 자극적인 맛에 진저리를 쳤다. 얼굴이 빨간 나를 보고 어머니는 "아직 익지 않아서 그래! 이제 익으면 훨씬 맛이 있단다."


그때는 몰랐는데 숙성되고 발효되면 맛있다는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시집와서 김장 25번 하면 할머니가 된다는 속어가 있다. 어머니는 시집 와 22번 김장을 하고 할머니가 되기 전 42살의 아까운 나이로 6·25 때 지방 빨갱이에 의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하여 비명으로 돌아가셨다. 내 나이 17살 고1 때이었다.


나에게 얼른 물을 먹어 주시며 김장한 지 21일이 지나면 아주 맛이 있다고 하시던 어머니!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 하고 벌린 입에 넣어 주시던 짭짤하고 너무 맵던 김장 맛은 영 잊지 못한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아내가 정통방식으로 김장을 담을 때 싱거운지 짠지 맛을 보라고 양념한 배춧속을 조금 떼어 입에 넣어 주었다. 그 맛은 옛날 어머니가 입에 넣어 준 그 맛이었다.


시대도 많이 변해서 요즘 핵가족에 사는 주부는 번잡스러운 김장을 하지 않고 마트에서 사 먹는다. 하지만 감칠맛 나는 김치 맛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선조들의 지혜가 밴 노하우에 의해서만 맛볼 수 있다.

보리밥 고봉(高捧) 한 사발에 달랑 땅속에 묻어둔 김치를 꺼내 금방 썰어 놓은 배추김치 한 가지만으로 너무 맛있게 먹었던 옛날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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