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계엄령?(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계엄령?(1)

아니 이건 뭐지? 

계엄령이 내렸다구? 

왜? 북한이 쳐들어왔나?

뭐지?


잠이 올 수가 없었다. 해외에 살아도 조국인 대한민국의 소식에는 크고 작은 뉴스라도 눈이 번쩍 떠진다.

그리고 그 소식이 기쁜 소식일 경우에는 마음이 공연히 즐겁고 뿌듯해진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올 때는 걱정으로 잠을 설치고 지속적으로 다음 인포메니션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특히 요즘같이 K-Pop, K-Music, K-Culture가 세상을 흔들어 놓고 있는 지금 시절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감사할 지경이다. 우리 직장엔 1000여 명의 근무자가 있다.

물론 내가 알기로는 한국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은데 다른 디파트먼트들도 있으니 잘 모르겠다.

내 사무실이 속해있는 빌딩 안에 300여 명이 근무하는데 그중에 한국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몇 년 전부터인가 우리 사무실에도 K-Culture 열풍이 불어오며 우리 직원 중 1/3 정도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매일 매일 아침마다 시작되는 브리핑 타임을 마치면 모두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지난 밤늦게까지 정신줄놓고 본 드라마 얘기에 꽃을 피우고는 했었다.


옆에서 동료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무슨 얘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얘기를 하기도 하였다.

나는 보지 않은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이기도 하고 또는 자기들이 BTS Army라는 얘기도 들리고…


나는 한동안 BTS Army가 무슨 뜻인지를 몰랐는데 직장동료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동료의 집에 걸려있는 BTS의 커다란 포스터들을 보면서 이 친구가 설명하기를 자기가 BTS의 Army라고 설명을 해주어 알게 된 상황이었다.


아무튼 한국의 노래가 한국의 문화가, 이렇게나 세상을 흔들어 놓다니..

정말로 신나는 일이었다.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까이 살고 있는데 퇴근을 하고 집에서 있다 보면 자주 전화가 왔다.


레지나, 지금 드라마 보고 있는 중인데 너도 함께 와서 보자구?

때로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한국의 풍습(사람들이 모여서 자주 밥상을 함께 하는 것, 연세가 많은 이들에게 목례를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 또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특별한 IT 발달에 커피숍이나 음식점 등에서 자기가 쓰던 랩탑이나 손가방 등을 두고 가도 남이 가져가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하기도 하고.


나는 두 해 전 한국방문 중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는 KTX를 타고 가다가 실수로 전화를 두고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전화를 기차 안에 두고 내린 것을 승무원에게 전화기를 두고 내렸다고 신고하니 그로부터 두 시간 후에 내 전화기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 느낌은 감동이었다.

만일 미국에서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내가 미국으로 온 지 40여 년 후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편리하고 발전이 되었는지 미국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정말로 감사한 마음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족 중 형제들이 잘산다고 하면 내가 잘사는 기분이 들며 공연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대한민국의 세계에서의 상황은 이민자들에게는 더 없는 감사의 대상이었다.

며칠 전 윤석열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를 들으며 이건 뭘까?

다음 소식이 궁금해서 잠이 오지를 않았다.


이건 뭘까? 북한이 침투했나?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여러 가지 생각에 뒤척이면서 생각에 잠기어보았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대한민국의 문화, 음악, 노래, 음식 등으로 모든 이들이 평생에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은 나라 중 첫 번째라는데 지금 상황에서 발표한 계엄령이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어갈까?


그리고 계엄령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일까?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조들의 피땀 흘린 노력과 선배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뜨거운 열대의 나라에 가서 밤낮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조국으로 보내고 우리나라의 간호사들이 독일로 건너


가 자국 간호사들이 안 하려는 시체 처리하는 일 등을 하며, 석탄을 캐러 천 길 같은 막장으로 들어가 숨

도 쉬기 힘든 상황에서 석탄을 캐며 돈을 모아 조국으로 보내고,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월남전에 용병으로 가서 자유 체제를 도우며 돈을 벌어서 조국으로 간 이 돈들이 한국의 경제 발전의 기틀이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중요한 이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장기 집권체제를 구축하여 많은 민주인사들하고도 마찰을 가지며 강제로 이들의 모임을 해산시키며 때로는 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물리적인 힘을 가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힘으로 강하게 밀어붙인 경제 발전의 시작인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을 더불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포항제철이 생겨 철을 제련해내고 현대 조선소가 생겨서 배를 만들어 외국으로 수출하고.. 


지금도 기억하는 사건은 그때의 정부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려고 시도할 때 야당 대표들이 고속도로가 생기는 그 자리에 드러누워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심각하지 무슨 고속도로냐고 반대하며 길가에 드러누워 있던 사진들의 모습이다.


그때의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으로 인하여 많은 젊은이가 다치고 감옥에 가고 했던 기억들이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나는 그때 대통령의 결단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다. 

너무 많은 희생자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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