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완전한 사랑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완전한 사랑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은 평생 동안 완전한 사랑을 이루며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성 간에, 부부지간에, 또는 친구지간에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살고 있다. 이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지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완전한 사랑은 아니다.


인간은 일생 동안 여러 가지 병을 앓는다. 그런데 고독이라는 병은 청진기로 감지되는 육체적인 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성 깊숙이 숨겨져 있는 정신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없는 고아의 곤고함과 고독감, 사랑의 대상자를 갖지 못한 외로움,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한 본능적인 적적함, 조국을 떠나 느끼는 향수... 이런 것들은 언제든지 우리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고독에서 벗어나려고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난다. 그런데 시골 사람들은 도시를 찾고, 도시 사람들은 농촌을 그리워한다. 인간은 육체적인 고독을 해소하고자 타인과 만나고 사회를 찾아가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인간은 홀로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홀로 책을 읽거나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정신적인 고독은 예술이나 학문을 통해 많이 해소될 수 있다.


이러한 육체적 고독과 정신적 고독이 병이라면, 그 치료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질적인 고독이 인간에게 존재하는데, 이것은 군중이나 사회로부터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영원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고독인데, 이것은 자아를 무한 또는 영원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고독이다. 자아를 영원과 무한성 앞에 세워 놓고 시간과 유한으로 인생을 깨달을 때 뼈저리게 스며드는 고독과 절망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진단했다. 실존적인 고독이라는 병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염세와 허무에 빠지고 비참한 죽음에까지 이를 것이다. 이러한 고독은 "나의 병이 아니다"라고 호언장담하며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병자임을 모르는 것은 불찰이요,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시간에서 영원을 찾아 살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인간은 영원 없이는 의미가 없는 시간적이고 유한적인 존재이며, 영원을 향한 기대 없이는 의미 있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고독의 반대는 사랑이다.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깊은 고독을 느끼는 법이다. 


얻을 수 없는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이 누구보다도 고독해진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고독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고독을 잠시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실존적인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영원을 사랑하고 갈망하기 때문에 영원을 얻을 수 없고, 언제나 고독 속에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은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으로 채워질 때만 해결된다. 그런데 완전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는 완전한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한 사랑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사랑은 인간적인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야만 가능하다. 인간은 욕심이 많은 존재이므로 완전한 사랑을 이 세상에서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한 세상을 살면서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고 소유하기를 원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완전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 사람에게는 이 땅의 시간이 끝나도 영원이 주어진다. 고독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 남는다. (김형석 교수의 글 중에서 일부 발췌) 이런 사랑을 하며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지만, 이런 사람은 사랑을 이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사랑을 소유하고 가지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영원하고 완전한 세상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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