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국어사랑‧나라사랑(2)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국어사랑‧나라사랑(2)

우리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말을 더욱 아름답게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말을 뒤로 감춰두고 안 쓰면 녹이 슬고 삭아서 없어진다. 좋은 말은 자꾸만 써야 빛난다. 연장이나 좋은 악기는 잘 닦아 쓰지 않으면 녹이 슬어서 못 쓰게 되는 것같이 말도 안 쓰면 사그라진다. 


이민 온 우리들이 우리말을 5-10년간만 안 쓰면 70% 이상을 잊어버린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이민 와서 미국 중부나 남부 지방, 한국 교포가 없는 소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은 우리말을 거의 잊어버렸다. 영어는 잘하고 많이 배웠지만 우리말은 잊어버렸으니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얼치기가 되었다. 


혼자서라도 열심히 한국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글을 썼다면 잊어버리지 않았을 터인데, 미국인과 결혼을 했거나, 미국인 가정에 어려서 양자나 양녀로 들어온 사람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 한다. 금년에 미국에서 당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한국 여성(미혼여성)이었다. 그녀가 한국인 아나운서와 이야기를 하는데 순전히 영어로만 해서 통역관이 따라붙어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얼굴 모습과 피부 등은 영락없는 한국여성인데 한국말을 못하니까 어색하고 친근감이 없다. 다행히 인사 정도는 한국말로 할 수 있어서 좀 괜찮았지만, 우리는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 땅에서 살아도 여전히 한국인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알퐁소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 알퐁소 도데의 이 글이 실리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는 이 글을 읽고 자국어의 애착과 긍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국민성을 높이 평가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나라말에 대한 짙은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유명한 보불전쟁 때 프랑스의 패배로 인하여 프랑스어 수업이 금지되었다. 프랑스어 선생(국어 선생)인 아멜은 칠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이 프랑스어의 마지막 수업이다.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명료하며, 가장 힘찬 말이다. 여러분은 이 프랑스어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아멜 선생은 차마 말로는 이런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기 전에 이미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으므로 칠판에 썼던 것이다. 학생들과 헤어지면서 그는 크게 칠판에 다시 ‘프랑스 만세’라고 썼다. 모국어를 사랑한 프랑스인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모국어를 사랑한 작가로는 폴란드의 작가 생키에비치를 들 수 있다. 여러분은 생키에비치는 잘 몰라도 ‘쿠오바디스’는 알 것이다. 바로 이 ‘쿠오바디스’를 쓴 작가인데 이 생키에비치도 모국어를 굉장히 사랑한 사람인 것을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등대지기’라는 그의 단편을 읽으면 정말로 눈물이 날 만큼 그의 국어 사랑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조그마한 항구도시에 등대지기를 구하는 광고가 났다. 스카빈스키라는 60이 넘은 노인이 자원을 했는데 이 사람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젊어 보였고 몸도 건강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자 외국으로 망명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는데 오직 등 대지기만은 못 해보았으므로 마지막으로 등대지기를 택했다. 


단조로운 등대지기 생활이 무척 고독했지만 그럴 때마다 등대의 발코니에 나가 광대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면 속이 후련했고 그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는 점점 고독에 익숙해졌고, 등대와 절벽 그리고 갈매기들과도 친숙해졌다. 


하루에 한 번씩 물과 식량을 날라다 주는 경비선 편에 하루는 작은 소포가 함께 딸려왔다. 소포는 그가 뉴욕에 살 때에 그의 수입의 일부를 폴란드 문학가협회에 기증한 일이 있는데 바로 그 협회에서 보낸 한 권의 책이었다. 등대지기 노인은 폴란드어로 쓰여진 그 책을 얼싸안고 어린아이처럼 뛰면서 좋아했다. 


‘얼마 만에 보는 모국어인가! 아! 폴란드어여!’ 그 책은 유명한 폴란드 시인 미키에비치의 시집이었다. 이 노인이 폴란드를 떠난 지 40년이 지나 그동안 거의 모국어를 쓸 수 없었는데 바로 모국어로 쓴 시집이 온 것이다. 고향에서 불어온 훈훈한 바람만큼이나 감격적이었다. 오래간만에 모국어를 읽자니 발음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밤새도록 읽으면서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모국어를 잊어버린 자신을 생각하며 목이 메어 흐느끼면서 조국에 용서를 빌었다. 새벽이 되도록 등대에 불을 켜지 않았다. 늦게 잠든 그는 꿈속에서 고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결국 등대지기가 불 을 켜지 않아 근처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으므로 등대지기는 해고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모국어에 대한 짙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 국어를 사랑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국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국이 있으면 모국어가 있고, 조국을 잃으면 국어도 잃는 것이니까... 특히 해외에서 우리는 모국어를 사랑하고 매일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나라사랑의 첫걸음이고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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