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뭔 날들이여?: Maundy Thursday, Good Friday, Easter
이 칼럼의 애독자께서 이 글이 실린 신문을 집어 드시는 주말은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Good Friday(성금요일)과 Easter(부활절) 사이의 어느 날일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시라면, 많이는 들어 보았으나, 왜 그리 이름 지어지고 불리는지를 궁금해 하실 수도 있으리라. 하긴, 기독인이라 하더라도 왜 예수님이 처참하게 돌아 가신 날을 ‘선한 금요일’이라고 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도 많으리라. 부활절을 맞으며, 우리 자녀들이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 날에 대해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든다.
필자의 지인인 어느 학부모께서 “제가 기독교인도 아니고 한국에서 늦게 미국에 이민을 오다 보니, 미국을 비롯한 서양 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몰라 좀 걱정이 되네요.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어서요. 요즘은 학교에서도 종교에 관한 내용들은 다루기 꺼려 하니 말입니다.”라며 한탄을 하신다. “그럼요. 서양의 철학, 예술 등에 표현된 내용들 중에 기독교적 배경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 많지요.” 필자가 맞장구를 친 일이 생각나 이때쯤 이면 소개하는 글을 되새긴다.
부활절을 맞아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주초부터 시작해 독자들께서 이 신문을 펴시는 주말에 이르는 한 주간은 기독교의 큰 명절 주간이다. 성경에 따르면, 지난 토요일 저녁부터 오는 토요일 저녁(부활절 전날)까지가 유월절 절기이며, 이것은 기독교의 고난 주간과 궤를 같이 한다. 고난 주간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따져 보면, 기독교의 정수들이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지난 일요일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자, 그 성의 주민들은 “호산나! 호산나! (Save us now,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예수를 환영한 종려 주일이었다 (Palm Sunday). 기독교적 신앙 고백이라기 보다는 로마의 지배하에서 유대 민족을 구해달라는 주민들의 외침이었으리라. 다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으로 유명한, ‘최후의 만찬’일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신 목요일 밤 (Maundy Thursday)이다. 금요일은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날인데 (Good Friday), 이런 의미에서 우리 죄인들의 입장에서 죄를 사함 받은 이 날이 ‘선한 금요일’로 불리는 것이리라. 3일 뒤인 일요일은 그 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인 부활절(Easter)로 기념한다. 이 한 주간을 크리스천들은 고난 주간(Passion week)으로 기념해 지킨다.
이 주간에 성경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많은 성화들의 주제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은 대부분 아실 것이다. 그 중 위에 언급한 최후의 만찬을 다룬 그림들이 많은데, 그것의 배경이 된 성경 말씀을 읽어 보자. 신약 성경의 요한 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갖는 장면이 기술되어 있다. “저녁을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 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 그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주인이나 방문한 손님들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종들의 몫이었다. 발을 씻기신 이유는 같은 장에 1)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2)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관습을 깨는 파격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더욱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전에 이미 제자들이 당신을 곧 배반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했다는 점이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다음 날 아침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자기가 예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부인을 할 터이고,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두 도망을 갈 것이며, 가롯 유다는 식사 후에 예수를 은 30전에 팔아 넘길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너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라는 물음이 필자의 귓가에 쟁쟁하다.
레오나르도의 만찬 그림을 감상할 때, 이런 배경 지식을 알고 있으면 훨씬 정확히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라는 희망이 앞서 언급한 학부모님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부터는 우리 어른들이나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해가 예견되더라도, 혹시라도 자신이 섬기는 이들의 배반이 염려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섬기며 발을 씻어 주는 삶의 태도를 견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마음을 갖고 실천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세상 속의 천국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주제와 연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재정적으로 큰 손실이 예상됨에도 하버드 대학이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학칙 변경 등의 요구사항을 거부한 것이 오버랩 되는 시간이다. (www.ewaybellev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