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To 쌤(1)
이제 집안 정리가 끝났으니 이층으로 올라가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셀폰의 벨이 울리기를 몇 번째. 자기 전에는 전화를 안 받고 싶은 마음이라(잠자기 전 복잡한 일을 전화로 얘기를 하게 되면 잠자리가 편안하지가 않기에…) 무시하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지속적으로 울린다.
전화를 집어 들고 누군가 보니 예전부터 잘 아는 어느 컴퍼니의 미국 매니저다. 약간의 불길한 생각에 전화를 받아 얘기를 들어보니 오 마이! 마이!
"레지나, 지금 쌤이 여기에 와 있단다."
"그래, 지금 시각이 몇 시인데 쌤이 왜 거기에 와 있지?"
"글쎄, 나도 쌤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를 모르겠단다."
매니저의 말로는 자기네가 방을 점검하려고 온 방을 체크하는 중인데, 그중 한 방에서 쌤이 그야말로 널브러져서 자고 있는데, 술에 완전히 떡이 되어서(나도 이 말을 잘 몰랐는데 이번에 배웠다. 술이 너무 취하면 흐늘거리는 떡처럼 축 늘어진다는 표현) 아무리 붙잡고 흔들어 깨워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예 눈조차 뜨지 못한단다.
"그래, 그럼 얼음물을 살짝 얼굴에 발라보지?"
"그럴까?"
"레지나, 그래도 못 일어나는데?"
"그럼 쌤 얼굴에다가 얼음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 봐?"
"오케이!"
잠시 후 전화기 저편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래! 지금 눈을 떴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쌤이 일을 하러 왔단다. 차가운 얼음물에 정신이 조금 깬 듯한 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쌤, 그래! 지금이 몇 시인데 일을 하러 온 거지?"
"글쎄, 얘가 왜 이런 거지?"
"그럼 쌤하고 통화하게 바꿔봐."
전화선 저 너머로 술에 완전히 떡이 된 쌤의 목소리가 혀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지, 뭐라고 하는 줄도 모르게 웅웅거리며 들려온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며 쌤의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쉘터에서 자다가 시간을 보니 아침 7시라서 일에 늦을까 봐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무조건 버스를 타고 일하러 온 거란다.
"그런데 너 지금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있는 거니?" 하고 물으니, 지금 아침이란다.
"그래, 그럼 아침이 이렇게 깜깜하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이상한지 전화를 받으면서 옆의 사람들에게 지금이 밤이냐 낮이냐를 묻고 있다.
물론 밤 10시경이지!
"그리고 너 어떻게 술을 그렇게나 많이 마시고 일터로 갈 수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쌤은 자기는 술을 안 먹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서둘러 일을 나온 것뿐인데,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자기보고 술에 취했다고 한다며 "너는 그래도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취한 목소리로 나를 나무란다.
나는 쌤하고 얘기를 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매니저에게 쌤을 무조건 내보내라고 하니, 걱정이 된 매니저는 지금 이 시각 이 애를 내보내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온다.
"아무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 애를 무조건 내보내라"고 하니 저쪽에서 들려오는 전화선 저너머에서 쌤의 소리가 들린다.
자기는 지금 쉘터로 돌아가도 시간이 늦어져서 받아주지를 않으니 여기서 자고 간단다(지 맘대로).
나는 다시 쌤을 바꾸어 달래서 "너 지금 당장 밖으로 안 나가면 그 매니저가 경찰을 부를 테니 나가야 돼!"라고 말하니 쌤은 "그러면 자기는 어디서 잠을 자야 하냐"고 묻는다.
"그럼 네가 묵고 있는 쉘터에 내가 전화를 해서 late entry(늦게라도 들어갈 수 있게) 해놓을 테니 지금 당장 나가라구!" 매니저가 다시 전화를 바꾸더니 "레지나, we tried our best but doesn’t work!"
우리가 노력을 해보았는데 절대로 안 될 일이니, 쌤이 그동안 일한 급여를 체크로 지불해서 지금 밖으로 내보내겠단다.
"오케이!"
나는 퀸앤에 있는 우리 쉘터 프로그램 중 밤에 근무하는 카운슬러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리스, 나는 000 프로그램의 카운슬러 레지나인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줘.
그동안 쌤이 술을 계속 먹은 거야?"
크리스는 "그럼, 쌤은 항상 술에 젖어 있었는데, 술 먹어서 몸이 흔들릴 정도면 자기네 쉘터에 못 들어오게 하니까 그 정도는 아니라도 늘 술에 취해 있었단다."
"그래, 그럼 지금 쌤이 북쪽에서 시애틀 다운타운까지 가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 쌤이 들어오는 대로 너희 쉘터에서 받아주기를 바래."
크리스는 "원래는 정해진 시간 내로 안 들어오면 못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담당 카운슬러의 부탁이니까 그러마."라고 대답을 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꿈을 꾸었다. 밤새도록 누군가가 쫓아오는 꿈을. 아니, 한숨도 못 잤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쌤이 이제 자리를 잡아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내 마음의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위로해보기도 하고(아이구 뭐 내 자식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할 거야! 지가 하기 나름인데 못 하면 할 수 없지!)
"아니, 그래도 쌤이 왜 나를 감쪽같이 속였을까? 술을 안 먹은 지가 오래된다구!"
"아니, 저 인생이 너무 불쌍한데 어찌하지?"
"아니, 언제 쌤이 나를 속였어!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술 냄새가 나도 쌤이 아니라고 하니까는 나는 그 얘기를 믿고 싶었던 거지! 아이구 나쁜 놈!"
"그러나 여기서 쫓겨나면 다음 주에 인터뷰하기로 한 풀타임 포지션을 준다는 그 학교의 청소일은 못 하게 될 텐데?" "지금 여기에서 잘하고 있어야 그쪽에 좋은 추천을 받을 수가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에 잠을 못 자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왔다. 거울을 보니 얼굴색은 하얗다.
나는 그동안 폐렴으로 고생하다가 이제 좀 나을 만해서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 로비에서 "레지나, 레지나"를 찾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음! 음! 음! 쌤이 왔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술이 깬 건지 풀이 팍 죽어버린 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쌤을 카운슬링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자리를 마주했다.
"너 나에게 할 말 있니?"
묵묵부답!
"그럼 어젯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그 얘기를 해봐."
쌤은 어디서 맞았는지 눈두덩이 밑에 시꺼멓게 멍이 든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뗀다.
자기가 어제 쉘터에 4시에 들어가서 잠을 잤는데, 깨보니 7시라서 일이 늦을까 봐 무조건 버스를 타고 일하는 모텔로 갔는데, 그 사람들이 경찰을 부르네 뭐네 해서 그냥 왔단다.
나는 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제는 몇 시에 술을 먹은 거지?"
쌤은 내 질문에 대답 없이, 자기는 일을 하러 갔을 뿐인데 매니저가 마지막 체크라고 주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으니, "너는 나를 도와주는 카운슬러이니 절대로 가만 있어서는 안 되니 법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한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쌤을 쳐다보면서,
"너 술 어제 언제부터 마신 거고, 술에 완전히 떡이 된 채로 모텔로 가서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잠을 잔 건 기억하지?"
"자기는 일을 하러 간 거란다."
"오케이, 그럼 술은 마신 거 맞지?"
"아니란다."
"그럼 술을 안 마셨다면 어떻게 그렇게 취할 수가 있는 거지?"
아무 말도 없다.
"그래! 그럼 우리 소변 검사 해보자."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