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말하는 문명의 이기(利器)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말하는 문명의 이기(利器)

고국에 와서 말하는 밥솥으로 지은 아침밥을 먹었다. 낭랑한 목소리, 다정한 말투로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취사가 시작(始作)되었습니다. 증기(蒸氣)가 배출됩니다. 따끈따끈한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전화번호를 알아보려 114에 문의하였더니 “고객님! 번호를 늦게 누르셨습니다. 다시 한 번 눌러주시겠습니까?”


물을 먹으려고 정수기의 버튼을 누르니 “알칼리성 음료수가 나옵니다.”라 한다.

증손주가 동화책을 펴니 책이 말한다. “아주 먼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완구도 말을 한다.

TV 화면에서는 남녀 아나운서가 번갈아 뉴스를 말한다.


오랜만에 여러 친지들을 방문(訪問)하였다. 아들이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니 내비게이션이 말을 한다. “20m 전방에 급커브가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가는 동안 내내 말을 그칠 줄 모르고 혼자 지껄인다. 차 안에 있는 라디오에서 흘러간 노래가 구성지게 들려온다.


친지를 방문하는 곳마다 고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아리따운 아가씨의 목소리가 정겹고 다정하다. “문이 닫힙니다.” 말과 동시에 문이 미끄러지듯 스르르 닫혔다.

“다음은 2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이렇게 안내 방송은 계속되었다. 42층에 사는 딸네 집은 너무 높아 올라다닐 때 어질어질하다.

미국에서 30여 년간 살면서 기껏 높아야 6층 아파트를 올라다니다가 초고층의 아파트를 엘리베이터로 단숨에 올라다니니 귀가 멍멍하다.


고국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전철역에서 아가씨의 안내 방송이 끝도 없다.

“여기는 ○○역이고 다음 역은 ××역입니다.”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보면 반은 뛰다시피 빨리 걷는다.


한국의 엘리베이터도 덩달아 작동이 빠르다. 출발하면 금방 올라가고, 금방 문이 열리고 닫히고 시원하게 상하 운동을 한다. 아주 오래전에 시교육위원회에서 장학사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대입 업무의 과로로 쓰러져 입원한 상사(上司)의 문병 겸 결재를 받으러 직원들과 함께 H대학 부속병원에 갔다. 


그때는 엘리베이터를 아가씨(girl)가 수동으로 운행하였다. 젊고 예쁜 목소리로

“다음은 5층입니다. 6층은 서지 않고 7층에 섭니다.”

당시는 에너지 절약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1층씩 건너섰었다. 


6층에 입원한 환자를 보러 가는데 서지 않고 7층에 서면 직원 일행이 모두 계단으로 걸어 내려갈 형편이었다. 그러면 시간을 빼앗겨 바쁜 스케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6층에 꼭 서야만 했다. 그런데 서게 하는 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일행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초를 다투는 시간이었다. 


나는 얼른

“아가씨! 장학사들 모두 상사를 문병하고 업무 결재를 맡기 위해서는 6층에 꼭 내려야 해요. 안 그러면 이번 대학 입시 업무에 차질이 생겨요. 부탁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급하게 말했다. 


그게 아마 2초는 걸렸을까? 망설이고 생각만 하고 있던 그 아가씨는 6층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6층에 섰을 때 우리는 신기해서 환호성을 지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렸다. 그 짧은 시간에 순발력 있는 나의 대처 능력에 모두 감동한 듯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엘리베이터 걸(girl)은 서지 않도록 되어 있는 층은 절대로 서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서 달라고 사정을 해도 상부의 지시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만 특별히 섰다. 아마 대입 업무란 말을 듣고 협조한 것 같다.


우리 일행은 그 아가씨의 배려 덕분으로 빠르게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말하는 엘리베이터가 자동적으로 안내하는 편리한 세상(世上)이 되었지만, 아가씨가 육성으로 웃으면서 안내했던 그 시절이 정겹기만 하다.


초고층 아파트에 올라가 있으면 건물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사람들이 더러 어지러움을 느끼며 멀미를 할 때가 있다. 이를 ‘빌딩병’이라 부른다. 하루는 초고층 아파트 아래 화단에서 어머니는 서 있고 고등학생의 아들이 흙을 두 손으로 한 움큼 담아 코로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어머니로부터 왜 흙냄새를 맡고 있는지 사연을 들었다. 47층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애가 어지럽다며 멀미 증세를 호소하였다고 한다. 흙을 밟고 살아야 건강한데 초고층 건물에 사니까 어지러워 흙냄새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빌딩병’의 초기 증세 같았다.


요즈음 일본에서는 로봇이 대화 상대가 없는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과 친구가 되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놀아주고 있다. 귀가 어두운 노인을 위해 큰 소리로 말해 주고 있다. 걸음을 걷는 데 도우미가 되어 주고 있다. 노인을 업어 주고, 마사지해 주고 있으며,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을 인도해 주고 있다. 


심지어 노인의 변(便)까지 처리해 준다.

어느 때는 로봇이 노인을 업고 달음박질한다. 그래도 조금도 지치지 않고 힘이 넘친다.

노인들을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는 로봇이 때로는 딸, 아들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비록 사람 얼굴이 아닌 로봇의 얼굴이지만... 그래서 노인들은 치매도 덜 앓고, 기억 상실증과 우울증도 사라진다고 한다. 이렇게 로봇이 노인을 위해 봉사하며 건강(健康)에 기여하고 있다니 대견스럽다.


우리는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문명의 이기(利器)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만일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은 얼마나 무미건조(無味乾燥)하고 답답하고 재미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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