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인공관절 수술 후(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인공관절 수술 후(2)

<지난 호에 이어>

수술 후에 날씬해지다 못해 가늘어진 다리를 쳐다보면서 “그래도 다리는 예뻐졌네!”라고 하니 담당 의사가 기가 막힌 듯 쳐다보며 “그래, 맞아!”라고 한다. 이제 이 나이에 미니스커트도 입어볼까? 나의 얘기에 옆에서 듣고 있던 간호원이 박장대소하면서 얘기한다.

“레지나, 위 러브 유!”

좋지!


수술한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매주 3번씩 물리치료를 다니는데, 이 물리치료가 엄청 도움이 된다.

물리치료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회복하는 데 엄청 도움이 된다.

물론 아직도 제대로 구부러지지 않는 무릎을 굽히는 데 애를 쓰지만, 매일 조금씩 물리치료사가 준비해 준 끈에 발을 묶고 안으로 굽혀주면 무릎이 보이지는 않지만 점점 각도가 정상으로 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무릎 펴주기도 마찬가지다.

수술로 인하여 근육과 힘줄들이 경직되어진 무릎을 쭉 펴내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매일 하루에 시간 나는 대로 펴기, 굽히기 연습 끝에 아직은 정상인 135도 각도는 안 되지만 120도 정도의 각도까지는 구부릴 수 있었고, 무릎을 펴기 위해 5파운드의 모래주머니를 무릎에 올려놓으며 다리 펴기를 시작한 지 8주 만에 거의 정상적으로 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의 지침에 따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술하기 전에도 계단 오르기가 어려워서 3층 구조의 집을 정리하고 단층 구조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공교롭게도 이 집의 뒷마당은 숲에 쌓인 언덕이 있었고, 이 언덕이야말로 계단 오르기 연습에 안성맞춤인 곳이라 뒷마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수술한 다리도, 또 수술을 앞둔 왼쪽 무릎도 어느 정도 근육 훈련이 되는 듯했다.


아직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내가 두 무릎을 수술한다고 하니, 사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연세 많으신 분들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하시는 말씀, “레지나, 사기 치냐고? 멀쩡하게 생겨서 무슨 무릎을 수술한다고 하냐고…” 하신다. 아무래도 늘 거의 표현을 안 하는 나의 무릎 통증과, 어떤 일이든 주어지는 일에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긍정적인 나의 행동과 말이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아니다’ 싶어 보였던 것 같다.


아직 그분들보다는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데… 말이다.

수술을 받기 전까지 안 해본 치료가 없다.

한의 침도 맞아보고, 무릎에 주사도 맞아보고, 운동도 해봤지만 이미 망가져버린 무릎은 새로운 무릎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그때부터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한국의 의료시설과 회복 과정에 대하여 정보를 주셨다.

무릎 한쪽 수술과 병원 입원 치료까지 1만 불 정도가 든다고, 그리고 수술 후 2주 정도 입원시켜서 무릎 회복 운동까지 병행해 주니 퇴원할 때쯤이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도록 준비가 된다고 했다.

미국은 인공관절 무릎 수술 하루 만에 퇴원이다.


그리고 4일까지는 누워서 꼼짝 못하지만, 그 이후로는 본인의 의지로 재활에 임해야 한다.

물론 무릎 수술 후 16주까지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게 의사가 처방을 해준다.

물리치료사에게 도움을 받고 재활하는 것은 핵심 포인트인데, 그래도 집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수술 후 입맛이 없어진다.


이때 살이 무척 빠진다.

적어도 무릎 관절 수술 후 2주간은 누군가가 보살펴줄 수 있다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약 부작용과 몸이 아프니 지독한 우울증이 동반한다.

나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편이다.


웬만큼 쉽게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 수술 후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우울증에는 그냥 쓰러져 버리기를 몇 차례나 했는지 모른다.

조제 진통제를 끊어버리고 일반 진통제를 복용하니, 밀려오는 거대한 통증에 속수무책 쓰러져 그냥 깊은 심해의 바다에 침몰될 것만 같은 기분이 며칠씩 되곤 했다.


‘아하! 우울증이구나.’

나는 오랜 시간 크리니컬 카운슬러로 일하면서 약물 중독자들, 정신질환자 환자들과 함께 있었기에 우울증이 시작되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힘이 들어도, 몸이 아파도 이전에 하던 일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일어서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우울증을 털어버리고 밝은색 옷을 입고, 얼굴에 은은히 화장도 하고, 멋진 레스토랑도 가고(물론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못 먹었지만), 내가 돕던 단체의 활동 미팅에도 단시간 참여해 의견도 교환하고, 특별히 내가 서포트하고 함께하는 시애틀 여자축구 ‘레인’ 팀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아직은 목발에 의지하면서도 우울증을 털어버리고자, 그리고 생각을 바꾸고자 몸의 통증을 이겨내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씨훼어 행사에는 내가 행진할 수는 없었지만, 한인회를 도와 씨훼어가 시작하기 전(씨훼어 시작 시간이 저녁 7시) 나는 1시에 미리 나가서 아침 9시부터 화장실도 못 가고 기다리고 있는 분과 교대로 저녁 7시까지 파킹랏을 지켜주며 도울 수 있었다.


커뮤니티 서비스를 통하여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것(물론 다리가 아프니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지만), 집에 있어도 아프고 밖에서도 아프다면 어떤 방법을 택하겠는가?

아픈 중에도 내 전공인 상담 시간을 많이 사용했다.


필요한 분에게 전화 상담도 해주고, 아이디어도 교환하면서 내 정신이 아픈 곳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분산시키며 그분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이제 다음 주에는 기다리던, 그리고 하고 싶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왼쪽 무릎을 수술받을 것이다. 오른쪽 무릎 수술 후 얼마나 아픈지 경험했기에 절대로 왼쪽 무릎 수술은 하고 싶지 않은데, 결론은 이번에 안 하면 내년을 기다려야 하는(의사의 스케줄 때문에) 상황이고, 한쪽만 망가진 게 아니어서다.


생각해 보면 무릎을 잘라내고 티타늄으로 새로 만든 무릎을 집어넣었는데, 어찌 안 아프겠는가?

이번에 수술을 받으면서 느끼는 심정은, 혼자 사시는 분들이 수술을 받을 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외롭게 투병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아픈 분들의 회복에 함께한다면 그분들이 덜 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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