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라면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라면 이야기

1950년대 말 보험 회사를 운영했던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일본에서 경영 연수를 받을 때 처음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을 먹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라면을 라멘이라 부른다. 그 라멘이 당시 경제가 어려워 먹을 것이 없는 한국 사정에 맞는 식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6.25 전쟁의 상흔(傷痕)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 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게 되었다. 꿀꿀이죽 또는 유엔탕(UN탕)은 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에서 먹고 남은 잔반(殘飯)을 재활용해 만들었던 잡탕의 일종이다. 


기근으로 인해 식량을 구하기 어려웠던 피난민이 주로 먹던 음식으로, 이를 자조적으로 돼지 사료에 빗대 ‘꿀꿀이죽’이라 불렀다. 꿀꿀이는 돼지를 뜻한다.

전중윤 사장은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 생각이 났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일본에서 라멘 제조 시설을 사 들여 오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line)에 6만 달러인 라멘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 씨를 찾아갔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도 적극 호응해 주었다. 결국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주었다.


신용장을 가지고 일본으로 간 전 사장은 냉담한 반응에 부딪혔다. 일본은 라멘 제조 시설을 국교도 없는 가난한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 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 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게 되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 하는 라멘 제조 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달러로 즉석에서 발주해 주었다고 한다. 대단히 고마운 일이었다.


면과 스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멘 제작의 전 공정을 배웠다. 하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스프의 배합 비율(配合比率)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전 사장이 중요한 배합 비율을 못 배운 채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 주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일본 기술자들이 그토록 비밀로 쉬쉬하며 가르쳐 주지 않던 면과 스프의 배합 비율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전 사장은 오쿠이 사장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운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당시 라면 가격이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 하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 라면 값 10원은 2024년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43원이다. 실제로 국민 대다수가 빈곤층이었던 시절이어서 절대소득 자체가 지금과 비교도 못할 정도로 적었기 때문에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다. 김치찌개 백반이 30원, 짜장면이 20원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짜장면도 대부분의 집에서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외식으로 여겼다. 라면은 양도 훨씬 적은데 그 반절 가격이면 고가(高價)의 먹을거리였다. 그래서 출시 이후 라면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과 간편한 조리법으로 라면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간편식이자 간식으로 자리매김했고, 소비량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2021년 1인당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베트남으로 세계 1위였다. 베트남인은 1인당 85개를 먹었고, 2위는 한국으로 77개, 3위는 태국으로 연간 55개를 기록했다. 라면은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 주식의 위치를 차지할 확률이 높은 음식이다. 또 라면은 값이 싸고 조리하기 쉽고 맛도 괜찮으니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가 자리를 비웠더라도 밥의 위상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이다. 


“라면이 없었더라면 100만 자취생(自炊生)은 다 굶어 죽었을 것이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만들어 먹기 편한 음식이다. 간식 및 야식으로서의 활용도 또한 매우 높은 음식이다.

2023년도 라면 한 품목만의 수출액이 10억 불을 돌파했다. 이는 1971년 박정희 정부가 나서서 수출에 온 힘을 다해 전체 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달성하고 좋아하던 수출액과 같은 규모이니, 실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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