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추수감사절과 칠면조
미국 백악관에서는 매년 추수감사절 전날에 ‘칠면조 사면 행사’를 연다. 도축될 예정인 칠면조 중 한두 마리를 대통령이 골라내 살려 보내는 행사로서, 링컨이 대통령에 재임할 당시 링컨의 아들이 평소 아끼던 칠면조를 차마 도축할 수 없어 링컨이 칠면조를 살려서 백악관 뜰에 키운 일화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백악관의 공식적인 연례 행사로 자리 잡은 건 1989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부터이다. 현재는 추수감사절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살려 보낸 칠면조는 동물원이나 공원에서 여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려 준 칠면조도 공장식 사육의 영향으로 이미 뒤룩뒤룩 살이 쪘는지라 동물애호단체들은 이런 칠면조들도 오래 못 산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두고 백악관에서 임기 중 마지막인 칠면조 사면 행사를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앞뜰 로즈가든에서 열린 사면식에서 ‘토트’와 ‘테이터’를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이에 사면한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옥수수라는 뜻의 ‘콘(corn)’과 ‘콥(cob)’ 칠면조 두 마리를 사면했다. 언행에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를 잘하는 변덕꾼이나, 처세와 아부를 일삼아 뻔뻔스럽게 성향 바꾸는 사람들을 흔히 칠면조라고도 일컫는다.
같은 가금류인 닭, 오리, 메추리, 타조와는 달리 칠면조 알은 거의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알 생산량도 적고, 알 자체도 덩치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아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칠면조 고기를 먹는다. 칠면조는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 중에서 항상 센터(중앙)를 차지한다.
풍요의 상징이자 감사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돼지와 소에게 밀리던 칠면조가 한때 인기를 누렸다. 칠면조는 어떻게 하여 추수감사절 식탁의 주인공이 됐을까.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 청교도들이 1621년 맞은 첫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잡아 나눠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북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덩치도 큰 칠면조가 유럽에서 추수감사절에 주로 먹었던 거위를 대신한 것이다.
미국 칠면조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용으로 구입(購入)하는 칠면조는 평균(平均) 16파운드(약 7.3kg)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닭의 7배 정도 크기다. 더구나 칠면조는 겨울 준비를 위해 먹이를 잔뜩 먹어 살이 찐 가을에 가장 맛이 좋아 추수감사절 요리로 적당했다.
전통적인 북아메리카의 휴일로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에,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기념한다. 세계에서 추수감사절을 공휴일로 정한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뿐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의 추석과 같이 가족들끼리 모여 파티를 열고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미국 추수감사절 음식의 핵심(核心)은 구운 칠면조(Turkey)이며, 그 외에도 스터핑(Stuffing), 으깬 감자(Mashed Potatoes), 그레이비(Gravy), 크랜베리 소스(Cranberry Sauce), 옥수수(Corn) 등의 사이드 메뉴와 호박 파이(Pumpkin Pie)가 전통적으로 포함된다. 이들은 풍요로운 추수와 감사를 기념하는 연회의 필수 요소이며,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나누는 중요한 행사이다.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에 거위 대신 칠면조를 요리하게 된 것은 칠면조가 더 흔했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서민들이 먹는 거위 대신 부자들이 먹었던 칠면조가 더 많았으니 당연히 축제 음식으로 칠면조를 먹었다.
칠면조의 특징은 무엇인가?
닭과에 속해 있으나 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편으로 어떤 종류는 독수리보다 더 크다. 먹이는 잡식성으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수명은 약 5~10년 정도이고 수컷은 암컷 곁을 맴돌며 과시 행동을 한다. 최고의 유명 요리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 먹는 칠면조 구이이다. 칠면조 특유의 부채 모양 ‘꼬리깃’은 사실 공작과 마찬가지로 허리에 나 있는 깃털이다.
대한민국에도 칠면조 농장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키우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칠면조가 들어온 연대는 19세기 이후이며, 해방 이전까진 청동색 품종을 극소수 길렀으나 6·25 전쟁 이후로 백색 품종들이 들어와 사육 두 수가 늘었다.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칠면조 품종은 청동색종과 나라간시트종, 백색 홀랜드종이 있다.
한때 1960년대에 국가 차원에서 육류 수급을 늘리고자 칠면조 농가를 지원했으나 수요 부족으로 농가들이 피해를 많이 봤다. 병아리는 예쁜데 닭과에 속해 있는 칠면조의 새끼는 꽤 초라하고 못생겼다. 노란 털이 듬성듬성 난 데다 앙상해 보이는 중병아리 같은 인상이며 서양권에서도 못생긴 새의 새끼를 칭할 때 칠면조 새끼라고 말할 정도이다.
특히 새끼에서 성체 사이의 모습이 가관인데, 얼굴에 추하게 생긴 피부가 다 드러나며 노란 털마저 다 빠져서 일부만 극히 듬성하게 나 있는 상태의 추한 모습이다. 칠면조는 닭과 식성이 유사하고 크고 이상한 까르르륵(gobble gobble gobble 갑을 갑을 갑을) 하는 울음소리를 곧잘 낸다. 유튜브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인간이 먼저 소리를 낼 경우 칠면조 무리가 일제히 소리를 따라 하곤 한다.
그냥 영어로 아무 말이나 해도 따라한다. 실제로 칠면조는 맹금(猛禽)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성질이 사납고 독하다. 한 번 적개심을 품으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데, 칠면조가 늑대 무리에게 덤벼들어 싸움을 하여 퇴치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캐나다에서는 칠면조 사냥을 하려면 면허를 얻어야 한다.
이 면허를 얻기 위해서는 곰 사냥 면허나 무스 사냥 면허보다 훨씬 까다롭고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고 한다. 물론 이건 칠면조가 곰이나 무스보다 강하거나 위험해서가 아니라, 칠면조는 아둔하고 겁이 많을 거라는 편견 때문에 방심하다가 사고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해서 취급하라는 차원에서 까다롭게 심사하는 것이다. 머리 나쁘다며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이미지와는 달리 닭처럼 의외의 영리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색감을 구분하기도 하고 인간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가장 위협적인 천적인 인간 사냥꾼들의 습성을 파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아무리 사냥꾼들이 기다려도 서식지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해가 지고 나면 어슬렁거리면서 떼지어 나타난다.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법적으로 사냥을 금지하는데, 칠면조들이 법에 대해서 알지는 못해도 사냥꾼들의 활동 시간대는 알고 있는 것이다.
낮에도 좀 위험하다 싶으면 민가 담벼락에 앉아 가축으로 위장하고 사냥꾼들이 그냥 지나쳐 가면 멀리 도망쳐 버리기도 한다. 추수감사절에 먹는 칠면조의 생태(生態)를 알아보았다. 작년에는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고기를 먹었지만 올해는 굽기가 어려워 사서 먹었다. 추수감사예배를 마치고 점심에는 교회에서 전 교인이 칠면조 고기를 먹었다. 얼마 있으면 크리스마스 때도 칠면조 고기를 먹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