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잃어버린 ‘감사’를 찾아서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잃어버린 ‘감사’를 찾아서

이 칼럼을 독자분들께서 읽으시는 주말은 추수감사절 주말일 것이다. 보통 미국의 교회들에서는 미리 지난 주일에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는데,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전한 말씀이 생각나 여기 짧게 전한다.


예수께서 어느 날 10명의 나병 병자들을 말씀으로 치료하셨다. 당시에는 나병 환자들을 사회에서 격리하고, 정결하지 않은 자로 천대하던 때였다. 이러한 질병을 순식간에 치료받은 아홉 명의 환자는 기쁨에 겨워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단 한 명의 병자만이 남아 감사했는데, 그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온 자가 없느냐.”


이 성서의 이야기와 상관되어 생각나는 필자의 칼럼이 있어,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오늘 다시 나눈다: 교양이 넘치고 알뜰한 우리의 미세스 김. 연말 대목을 맞아 홍수처럼 이/메일 박스를 채운 갖가지 쿠폰 북과 블랙 프라이데이 광고들을 살피다가 옷을 챙겨 입고 남편과 함께 쇼핑에 나섰다. 가정의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엄마로서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올해는 관세 때문인지 오른 물가가 피부에 느껴질 만큼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상승한 관계로 선물을 할 분들의 리스트를 최소한으로 줄이느라 고심을 했다. 


아주 소수의 분들로 대상을 좁혔지만, 정성 어린 선물들을 사느라 열심히 발품을 팔다 보니 시장하고 목이 말랐다. 마음 한구석에는 어휴 커피 한 잔 값에 조금만 더 붙이면, 리스트에서 애석하게 빠진 먼 촌수의 이모님께 작으나마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하나 해드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주저함도 있었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조그만 과자 한 봉지와 커피를 한 잔 사 마시며 좀 쉬기로 작정했다. 


장시간의 쇼핑에 지루해진 남편이 가까운 해프 프라이스 서점에 들어간 사이 쇼핑몰 안의 스타벅스 커피점에 들렀다. 쇼핑객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에 어깨를 들썩이며 활보하는 쇼핑몰 안의 길목에 위치한 커피집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 명절을 느낀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뒤섞인 긴 줄에서 얼마를 기다린 후 겨우 뜨아 커피 한 잔과 마들렌 쿠키 몇 조각을 사 다른 손님이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테이블의 맞은편에 겨우 한 자리를 얻어 양해를 구하는 둥 마는 둥 눈 인사를 하곤 풀썩 주저앉았다.


며칠 전 이메일로 보내온 한 백화점의 세일 품목 안내 광고문을 셀폰에서 읽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과자 봉지에 손을 뻗었다. 아니 이게 웬 일?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과자 봉지에 거의 동시에 뻗쳐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들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한입 덥석 베어 무는 것이 아닌가. 맘씨 좋은 김여사, 뭐 실수였겠지. 신문을 열심히 읽다가 보니 자기 것인 줄 알았겠지. 그저 넘어가고, 시선을 다시 세일 품목 카탈로그로 옮긴다. 잠시 후,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린 뒤, 다시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든다. 


아니 이런 또다시 앞의 그 남자, 맛있는 내 과자를 한 조각 집어 들곤 빙긋이 웃음까지 띤 표정으로 자신의 티 잔에 살짝 담근 후 한입을 베어 무는 것이 아닌가. 그래 얼마나 무안하면, 얼마나 배가 고프면, 남의 것을 말도 없이 먹을까 하며, 감사절 다음 날인데 이 정도야 넘어가 줘야지 다짐한다. 더구나, 차에 마들렌 쿠키를 적셔 먹는 것이 불문과 전공자인 김여사의 아스라한 옛 기억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귀엽게 봐주기로 한 거였을지도 모른다. 


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그 과자를 차에 적셔 먹을 때, 지난 기억들이 무의식적으로 스며 나오는 것을 경험한 그 기억 때문에... 쿠키의 단맛이 김여사의 아련하지만 달달한 추억들로 시간 여행을 떠나도록 손을 잡아끌었기 때문에. 이제 아팠던 발도 좀 나아졌고, 아직 더 사야 될 품목들도 있다는 현실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쿠키를 입에 물고 커피 한 모금으로 살살 녹여 먹어야지 생각하며 손을 쿠키 봉지에 뻗는 순간, 아 참 동작 빠른 이 남자 자기가 먼저 냉큼 마지막 남은 과자 조각을 집어 들어서는 반쪽으로 똑 잘라 김여사에게 넘겨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몰상식한, 아니 반쯤 밖에 양심이 없는 XX. 교양 있는 김여사의 입에서 거의 튀어나올 뻔한 욕을 간신히 삼키곤, 뭔가 고상하게 한 방 먹여줄 영어 구절을 머릿속에서 찾을 즈음, 이 남자 보고 있던 신문을 차곡 접어 겨드랑이에 끼곤 사람 좋은 목례와 함께 자리를 떠난다. 참, 나. 요즘은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방법도 여러 가지구먼 투덜대며, 전화기를 챙겨 가방에 넣으려는 순간 가방 속에 삐죽이 얼굴을 내민 마들렌 과자 봉지가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화가 나 뚜껑이 열렸던 머리에 얼음 냉수를 확 끼얹어 김이 나게 하는 그런 기분. “아니 뭐야, 남의 과자를 먹으며, 그리도 불평을 한 거였어?”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받은 그 사랑을 잊고, 모든 것이 원래부터 자기 것인 양, 조금이라도 손해 볼까 노심초사하며 불만에 가득 찬 미세스 김의, 아니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였다. 


“웁스(Oops)” 하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자. 추수감사절은 올 한 해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화 한 통이라도 드릴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할 그런 시기이다. 우리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조금만 뒤로 물러나 김여사가 가방을 뒤지듯, 우리 속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지? 


공부에 소홀한 자식을 두둔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이렇게 잘생긴 우리 아이 올해도 건강하게 지켜주셨으니, 이제 정신을 가다듬어 좀 더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는 기도와 함께 어깨 한 번 보듬어 안아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내 배우자요, 자녀들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들이 곧 나 자신인 것을!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