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오칸토 리버(오칸토 강물) 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오칸토 리버(오칸토 강물) 2

<지난 호에 이어>

물론 우리가 이곳에 사는 동안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낯설어 하더니, 시간이 가면서부터 우리 가족을 한가족으로 맞아 주면서 이들이 잡은 사슴, 곰, 꿩고기들을 나누어 주기까지 하였고, 여름에는 자기들이 농사 지은 곡식들과 작물들은 우리 집 문앞에 잔뜩 갖다 놓아 주기도 하였다.


특별히 죠앤과 에이블은 독일계 계통의 부부였는데 나에게 치즈 만드는 법, 소꼬리와 치킨을 끓여서 만든 치킨부야 요리법을 알려 주고는 했다.

아이들은 이곳의 유치원에 다녔는데, 유치원에 가면 동양인을 처음 보는 이들에게 공주 대접을 받으며 유치원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앉으려고 자리를 비비며 자리 다툼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살게 된 집은 사택으로 이 동네에서 가장 멋진 벽돌집으로, 이곳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이 기증한 집으로 방이 9개에 긴 대리석의 복도가 있어서 겨울에 추워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우리 두 아이는 집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 정도로 집 안이 컸었다.


앞마당에는 오칸토 리버 물줄기가 흐르며 이른 아침이면 수달 가족이 수영을 하다가 물고기를 잡아서 장난을 치면서 하늘로 물고기를 토스해서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이슥한 밤이면 코요테나 여우가 “하울링” 하는 소리가 들리고는 했다. 집 뒷마당 쪽 길 쪽으로는 작은 사슴 공원이 우리 집에서 100미터 거리에 있었는데 갓 태어난 사슴이 얼마나 예쁜지!


우리와 함께 교회를 다니던 “쟌”이라는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20여 분 떨어진 산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는 냉장고가 필요 없었다.

집은 아주 멋지게 지은 나무집이었는데 이 집에 수풀을 헤치고 돌산 입구에 도착하면 돌산에 문을 해 달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돌속을 깎아서 만든 천연 냉장고에는 겨우내 먹을 양식들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한여름에도 돌속 굴 안은 차가운 기온이 몸을 떨게 할 정도였다.


쟌 부부는 우리에게 미리 만들어 놓은 곰고기 병조림, 사슴고기 병조림 등을 마구 집어 우리 차에 넣어 주고는 했었는데, 나는 어찌 요리할 줄 몰라 우리 집을 방문해 오는 친구들에게 주고는 했었다.

우리 집 앞을 흐르는 오칸토 리버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는데 우리 두 아이는 틈만 나면 오칸토 리버 다리로 가서 물고기들을 불러 보고는 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이곳의 미국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안정감을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동안 일하면서 학교 다니느라, 그리고 아이들 둘 키우느라 늘 피곤해 있던 터라 처음 이곳에 온 몇 개월간은 이곳의 느긋함과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에 너무 감사하고 즐거워 잠을 푹 자고 쉬면서 그동안의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7월에 부임해 와서 10월이 되면서 날씨가 차가워지고, 11월이 되면서 눈이 오기 시작하자

그동안 감사해하고 즐겁게 지내던 마음이 없어지고 “이게 뭐지?”라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을 했다.

매일 변화 없는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나갈 수 없는 길(11월부터 눈이 쌓이면 보통 동네 길 이외에는 교통수단이 어려워졌다.)


그때부터 몇 개월간 자연이 주는 쉼에 빠져 감사해하던 내 생활에, 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며 “아하! 이곳에 얼마나 살아야 하지?

내일은 뭐 하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 시작을 했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 가만 보니 아무래도 내가 이곳에 살게 된 뜻이 무엇인가 있겠다 싶은 생각에 마음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이곳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6.25 전쟁밖에 기억이 없는 나라이니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카고에 있는 총영사관에 전화를 해서 나라를 홍보할 수 있는 VHS 비디오를 보내 달라고 부탁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에 대한 교육을 하기 시작을 했다.


한국 교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몰려왔고, 이 소식을 들은 인터메리지를 하고 이곳과 먼 거리에 살던(30분 거리) 한국 여자분 서너 명도 찾아오고는 했었다. 여자분들은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과 결혼을 해서 이곳에 정착하여 완전 미국 사람처럼 동화되어서 한국말도 거의 잊어먹고 사는 분들이었는데, 이분들은 나의 한국말 교실에 참석하고 한국말 수업도 듣고 한국요리도 해 먹으며 잊어버린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는 했었다.


물론 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문화, 예절, 음식 등을 소개하기도 했으니…

나는 1980년도에 일찌감치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다.

이곳에서의 수많은 기억들,

치즈 함께 만들기, 사슴고기 요리… 이곳의 유명 음식인 치킨부야 만들기 등

오늘 새롭고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이 나는 것은 12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년 12월 초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커다란 솥을 장작불에 걸어놓고 소꼬리와 치킨, 야채를 넣고서 치킨부야를 만들어 먹으며 추운 겨울을 나고는 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오칸토 리버,

아이들과 오칸토 리버 다리 위에서 은빛 물고기들의 뛰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세월이 이만큼 지나고 나서 문득 생각이 나는 오칸토 리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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