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칼럼] 646. 성장주의와 저축 1
경제성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봄에 소나무가 새 가지를 내고 키가 자라나는 것이 연상된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이란, 말하자면 작년의 쌀 생산보다 금년의 쌀 생산이 더 많아진 것 같은 것이다. 자산이 소나무의 경우처럼 더 커졌다는 뜻이 아니다. 생산이 적어도 절약하면 오히려 자산이 늘어나고, 생산이 많아도 낭비하면 오히려 자산이 줄어드는 수가 있다. 생산이 많아졌다고 더 부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성장주의와 저축과의 관계를 파악하려면 우선 저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저축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는 왜 같은 금액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케인즈의 투자승수는 “저축과 투자는 같은 금액이다”하는 데서 출발하며, 그것은 저축과 투자를 각각 잘 맞추어 정의했을 때만 성립한다. 어떻게 정의하면 그것이 성립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표를 작성해 본다.
위 표는 먼저 생산과 소득(1)이 같은 금액(900)임을 나타내고 있다. 생산은 누군가의 소득이 되고, 누군가의 소득이 되지 않는 생산은 없다. 표의 오른쪽 부분을 먼저 보면, 소득에서 소비를 뺀 것은 당연히 저축(150)이다. 거기까지는 자명하며, 그것은 경제학을 몰라도 쉽게 이해된다.
바닥줄의 왼쪽 부분을 보면, 저축과 동일한 금액의 “투자(1)”가 보인다. 거기 보이는 50은 소비재의 생산이 소비보다 많았기 때문에 늘어난 재고를 뜻한다. 그 옆의 100이 뜻하는 것은 시설의 증가와 주택의 증가다. 이때 ‘투자’라 하는 것은 GDP 계산에서 사용되는 그 투자다. 또, 그것은 칼럼 445호(케인즈의 원본 투자승수)에서 본 바, 케인즈가 투자승수를 도출할 때 사용된 그 ‘투자’다.
앞 문단의 ‘투자’는 경제학자들이 정해놓은 개념이며,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을 왜 투자라 하는지 알기 힘들다. 빌 클린튼(42) 대통령도 그것을 쉽게 이해해 보려고 애쓰다가, “당장 없어지는 것을 구입하는 것은 소비,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는 것을 구입하는 것은 투자”라고 정리해 놓고는 이해한 듯한 기분을 가졌다.
경제학 바깥에서 말하는 “투자(2)”란, 이득을 바라는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재물을 던져넣는 행위를 말한다. 던질 투(投), 재물 자(資). 칼럼 445호에서 본 바, 이것은 케인즈가 투자승수를 활용할 때 사용한 투자 개념이다. 케인즈라고 해서 이러한 투자 개념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단지 위 표 속의 투자(1)와 이 문단의 투자를 구분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두 가지 투자 개념의 차이는 칼럼443호(세 가지 투자 개념)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투자와 저축이 같아지기 위해서는 첫째 투자를 위 표 속의 투자(1)로 정의해야 한다.
이제 저축을 검토해 본다. 위 표의 저축(1)은 생산에서 비롯되는 소득(1)에서 소비를 뺀 나머지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는, 생산을 통하지 않는 소득도 있다.
예를 들어 20만불 주고 산 제2주택을 10년 뒤에 30만불 받고 팔았다. 여러 것 제하고 6만불이 남았다. 경제학 바깥의 사람들은 이 6만불을 소득으로 보며, 세무 당국도 이 소득에 대하여 “양도소득세(capital gains tax)”라는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이 6만불은 거시경제학의 ‘소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학 바깥에서 생각하는 소득은 양도소득을 포함한 것이다. 거기서 소비를 빼고 나면 저 표에서와는 다른 저축(2)이 계산되어 나온다. 현실적으로 은행 통장에 나타나는 저축은 위 표의 저축(1)이 아니라 양도소득을 포함하는 저축(2)이다.
소득을 정리하면, 생산을 통한 소득(1)과 거기다 양도소득을 보탠 소득(2)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소비는 그냥 소비다. 그러므로 소득(1)에서 소비를 뺀 것은 투자(1)과 같은 저축(1), 소득(2)에서 소비를 뺀 저축은 투자(1)과도 다르고 투자(2)도 다를 저축(2)이다. 투자와 저축이 같아지는 것은 그 두 개념을 저 표 속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다. 케인즈는 저러한 표를 만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와 저축이 각각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음을 몰랐다. 케인즈는 그의 주저서 일반이론 속에서 투자와 저축이 같은지 다른지를 두고 갈팡질팡했다. <다음 호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