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교회] "새터민 신학생 간증 " - 시애틀 한인 교회 칼럼

전문가 칼럼

[오아시스교회] "새터민 신학생 간증 " - 시애틀 한인 교회 칼럼

저의 아버님은 다섯 개 나라 언어를 구사하시는 박식한 교육자셨고 저의 어머님은 모태신앙인으로 일제 때 캐나다 선교사님에게서 영어를 배우신 유식하신 분입니다. 1987년도 외할아버님이 보시던 성경책을 외삼촌이 발견하시고 두려워서 연탄불에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종합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던 외삼촌 가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가정이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났다고 저의 어머님께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교감이시고 장로님이셨는데 오늘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부모님과 외가 쪽이 기독교이라는 이유로 저의 청소년 시절을 굉장히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선노동당원이 아닌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 지금은 죄송하기만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최우등상을 받으며 꿈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부모님들이 일제 때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에 입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갑자기 막혀버린 저의 앞날이 부모님들 때문이라 생각하며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살아갈 용기도 잃은 청소년 시절은 너무나 불우하였습니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북한 땅에 고난의 시가가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를 이 땅으로 빼내시기 위하여 기근과 전염병을 주셨고 그 땅의 죄악과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의 시기에 저는 브로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1998년 3월 드디어 중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도착하였지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기꾼의 인신매매에 걸려들어 중국인 조선족 총각에게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게 가난할 수가 없는 중국의 조선족 시댁, 소금이 없어 된장으로 모든 반찬의 간을 맞추어야 하였고 입쌀이 없어 소들이 먹는 겨를 가져다가 시커먼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실망과 좌절, 두고 온 6살의 어린 딸, 부모님 생각에 저는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낯선 중국 땅에서 중국말도 모르고 깊은 산골에서 빠져나올 기회조차 없어 저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막막한 마음이었지만 워낙 책을 좋아하였던 저는 집에서 한글로 된 성경책을 발견하고 마냥 기뻤습니다. 그 책을 펼쳐보다가 저는 아버님께 들었던 유다와 예수의 이야기를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를 가지고 펼쳐보는 성경전서는 저의 베개가 되었습니다. 늘 두통으로 시달리던 저는 성경전서 책만 베고 자면 머리가 아프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비한 책이라 생각하며 펼쳐보다가 4개월 만에 일독을 하였고 무엇에 끌리듯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찬송은 감사 예수 찬송이었는데 이 노래만 10번 정도 반복하여 부르고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서로 인사와 교제로 마무리 짓고 끝나는 조그마한 시골의 조선족 교회였습니다. 그날 밤에 신기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배우지도 않은 감사 예수 찬송을 하늘 위에서 부르고 있었고 제가 땅 아래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저의 이마에서 큰 막대기 비슷한 것이 나오는데 얼마나 긴지 그분이 그것을 한 손으로 뽑아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속으로 저렇게 긴 쇠막대기가 내 머리통에 어떻게 들어가 있었지? 그렇게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세상에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요? 저의 남편의 얼굴이 그렇게 훤해 보이고 순한 양 같아 보이고 어진 남편에게 지난 세월 내가 술주정했던 것이 미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9시간 전만 해도 잠자리 들기도 싫었던 남편이 갑자기 성실하고 착하게 보였습니다. 벙실벙실 웃는 저를 더 이상하다고 쳐다보는 쪽은 저의 신랑과 세를 주고 살던 주인집, 그리고 저의 시댁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제가 어머님을 모시고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주기도문 10-50번 이상 읽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3시간 이상 걸리다가 나중에는 1시간에 50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알콜 중독자였던 저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함이라.”라고 말씀하시는 전도사님의 설교에 찔림을 받고 매일 매일 기도하였는데 1년 만에 완전히 술을 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국의 조선족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놀라운 성령의 뜨거운 역사도 체험하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북송이 날로 심해지자 시댁에서는 저를 한국으로 떠밀어 보냈습니다. 외래어와 IT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중국에 있었을 때가 오히려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오늘 신학공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시간을 통해 저는 세상 사람 날 버려도 주님만을 의지하도록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부모님으로부터 넘겨받은 신앙의 바통이 너무나 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성경 읽고 쓰는 아들과 성실하고 순수한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순간순간을 겸손히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 부어주신 시련과 고난은 주님의 사랑으로 저를 강건케 하였으며, 낮아진 마음으로 섬길 수 있도록 낮추어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드립니다. 

   

  지난번에는 남학생의 간증을 실었고 이번에는 여학생의 간증을 실었는데 여자들은 거의 모두 인신매매로 죽을 만큼의 고생을 하고 주님을 영접하고 기도로 기적을 체험하면서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북한에 목숨을 걸고 다시 가서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몰래 전도하고 온 분들도 계시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이 신학생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뜨겁게 교회를 세우고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서 70년 이상 주님을 부르지 못하고 숨죽이고 살았던 북한 백성들에게 큰 은혜의 소나기가 쏟아질 것을 믿는다. 꽃다운 한국 소녀들이 일제의 위안부로 잡혀가서 짓밟히고 모진 고통 속에 일생을 살아온 것에 분노할 줄은 알면서, 북한 여성들이 견딜 수 없는 가난 때문에 속아서 중국으로 아주 싼 값으로 팔려가서 온갖 고통을 당하는 일을 외면하면 되겠는가? 한국 정부는 중국에서 고통당하는 탈북자들의 인권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고,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북한 우리 동족들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무관심하고 귀를 막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가장 먼 땅끝인 북한, 불쌍한 내 민족, 내 이웃을 위해 당신은 기도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 고난 속에서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달려가서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주님의 종들이 되기를 결심한 새터민 신학생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저들을 통일의 마중물로 써주시고 고생한 만큼 높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새터민 신학생의 이름을 밝힐 수 없기에 후원자 이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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