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광천 쪽다리 이야기
아들과 같이 광천 새우젓 관광 가서 광천 쪽다리를 찾아보려고 수소문하였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새우젓 상회 주인에게 광천 쪽다리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옹암포 포구 근처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새우젓 상회를 나오면서 지나가는 70대 할머니에게 "할머니! 광천 쪽다리가 어디쯤 있어요?"
"저쪽으로 가면 있유!"
우리 일행은 차로 쪽다리를 찾았다. 광천에 있는 다리는 광천교와 옹암교 두 개뿐이었다. 어떤 이는 광천교가 쪽다리라 하고, 어떤 이는 옹암교가 쪽다리라고 하였다. 그것도 40대 이하 사람들은 쪽다리를 물으면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1970년 후반 보령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이 근처가 새로 개발되어 쪽다리가 어디쯤 있는가 찾기가 힘들었다.
안내 지도도 유심히 보고 위치도 상상해 보았다. 아마 옹암포 포구에 어선이 들어오면 어물(魚物)을 떼다가 파는 여자 행상인들이 그릇을 들고 아이 손을 붙잡고 서로 먼저 고기를 사려고 북새통을 이루다가 아이 손을 놓쳐 어린애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이 미아(迷兒)가 근처에 있는 쪽다리 밑에 방치되고, 어린애가 귀한 사람들이 버려진 미아를 데려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너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너의 어머니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살고 있어! 너의 어머니한테 데려다 줄까?"
"광천 쪽다리 밑에서 살고 있는 너의 어머니는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쓰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이런 농담을 곧잘 하였다. 이런 말을 듣게 된 아이들은 난감하였을 것이다.
아마 충남 장항선 역 주변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6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전부 이런 말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난 희미한 기억이지만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할 때 얼마나 서운하고 서글펐는지 울기까지 하였다. 더구나 할머니까지 합세하여 어머니 편을 드시니 모든 게 사실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어머니는 나를 낳은 친어머니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너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너희 어머니가 광천 쪽다리 밑에 살고 있다."라는 말은 실로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대부분 어머니들은 말 안 듣고 이유 없는 반항을 할 때 버릇을 고쳐주려고 이런 말을 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듣던 그대로 아내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하며 키웠다. 지금 그 애들이 60~70대이다. 그 후는 그런 말을 듣지 못해 지금 젊은 세대는 광천 쪽다리란 말 자체를 모른다.
먼 옛날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나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온 광천 쪽다리 설화(說話)는 더는 계승을 못하고 없어진 것이 아쉽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어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해도 젊은 엄마의 자식 사랑이 묻어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쪽다리는 서울에도 많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광천 쪽다리처럼 아이를 주워왔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부산 영도다리와 경북 영주의 청다리 설화는 광천 설화와 같은 맥(脈)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이다. 지금 그 다리 밑에서 너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거기 데려다 줄게."를 강조하고 있다. 부산 영도다리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 다리는 사람들로 늘 붐벼 미아(迷兒)가 많이 발생하였을 것이고, 자식 없는 사람이 그 아이들을 데려갔을 것이다.
영주 청다리도 지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광천 쪽다리는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쪽다리는 나무판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수명이 짧았을 것이다. 영주에는 이조 시대에 지금으로 말하면 사립대학인 유명한 큰 서원(書院)이 있었고 많은 인재를 양성해 냈다고 한다.
서원 근처에는 맑은 하천이 흐르고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청다리'이고, 여름철이면 경치가 좋아 많은 서원(대학)생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남자 서원생들이 모이는 곳에 여자들이 모이게 마련이었고, 부적절한 관계로 아이가 생기고 그 애를 청다리 밑에 내버렸다고 한다. 이 소문이 나서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버려진 아이를 주워다가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영주의 청다리와 광천의 쪽다리, 부산 영도다리, 아니 전국 어디나 다리가 있는 곳에서 다리를 중심으로 이런 설화가 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공통점으로 '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왔다'는 설화는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이나 자동차, 우마차(牛馬車)가 건너다니는 교각(橋脚)인 '다리(櫊)'와 사람의 아랫도리, 즉 하지(下肢)인 '다리(脚)'는 발음은 같으면서 뜻이 다른 동명이의음(同名異意音)이기 때문에 이런 설화가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닐까?
특히 여자의 '다리(脚) 밑(아래)'을 강조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천 쪽다리 밑의 설화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것을 전혀 모르는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무엇인가 하나를 잊어버리고 자라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