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통일은 이미 시작된 과정이다」 ③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4:14)
광활한 미국 대륙에서 이민 사역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동역자들과 성도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목사님, 왜 하필 한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 미국 땅에 계시면서 북한 선교를 하십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합리적인 의문입니다. 북한 땅은 휴전선 너머 한반도의 북녘에 있고, 내가 숨 쉬는 이곳 미국은 푸른 태평양을 수만 리 건너야 하는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말입니다. 물리적인 거리와 지리적 조건만 따진다면 미주 대륙은 북한 선교의 현장에서 가장 소외되고 멀리 떨어진 외딴섬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지난 19년 동안 미주 전역을 발로 뛰며 눈물로 북한 선교의 제단을 쌓아오면서 가슴 깊이 가인된 우주적인 영적 신비가 있습니다. 역사의 연출가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위대한 일을 이루실 때, 종종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사람’들을 들어 가장 가까운 곳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도도한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주류 세력이 타락했을 때, 언제나 사방으로 흩어진 나그네 된 백성들, 즉 ‘디아스포라’를 택하여 거룩한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부흥 역시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모진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세상 끝으로 흩어지면서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처절한 피난과 도망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그 강제적인 ‘흩어짐’이야말로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세계 열방으로 뻗어 나가는 거룩한 성령의 행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디아스포라는 단지 고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삶을 일구어가는 외로운 이민자가 아닙니다. 디아스포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왕국을 위해,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깨우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온 열방에 전략적으로 흩어놓으신 하늘의 비밀 결사대입니다.
오늘날 이 광활한 미국 땅에 세워진 미주 한인 교회와 디아스포라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슴속에 조국 한반도의 핏줄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와 성숙한 시민사회의 선진 시스템을 온몸으로 호흡하고 경험한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어라는 어머니의 언어와 영어라는 세계적인 언어를 자유롭게 소통하며, 뜨거운 한국적인 영성과 합리적인 서구 문화를 융합해 낸 축복의 세대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독특하고 절묘한 영적 좌표에 세우심으로써, 남과 북의 끊어진 허리를 잇고 세계 교회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거룩한 ‘연결자(Bridge Builder)’로 부르고 계시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지난 19년의 세월 동안, 저는 한반도의 눈물을 가슴에 품고 미국 전역의 대도시와 중소도시, 구석구석에 숨겨진 한인 교회들을 방문하며 통일의 불씨를 전해왔습니다. 솔직히 사역 초기에는 이민 생활의 고단함에 지친 성도들에게 머나먼 한반도의 통일 이야기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 박제된 구호처럼 취급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이념의 정치 논리를 걷어내고, 저 북녘 땅에서 하루하루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날 것 그대로의 비참한 삶과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내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핏빛 신앙의 자유 문제를 이야기할 때, 성도들의 굳어 있던 가슴은 일시에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은 차가운 정치가들의 권력 암투가 아니라,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의 이야기’에 가슴을 찢으며 반응했습니다.
자유롭게 창조주 하나님을 목놓아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는 성도들이 바로 저 국경 너머에 숨죽이고 있다는 사실, 평생 성경책 한 권을 손에 쥐어보는 것이 소원인 영혼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어린아이들이 단 한 조각의 빵이 없어 길거리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들을 때, 미주의 교회들은 비로소 깊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 눈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의 현장 속에서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통일은 차가운 외교 테이블의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고통당하는 형제를 향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은 언제나 거대한 체제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의 영혼’을 향해 흐른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특히 우리 미주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 열방의 교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세계사적이고 독특한 플랫폼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세계 문명의 심장부이자 국제적인 무대 위에서 한반도 복음 통일이 지닌 인류사적 가치와 영적 의미를 가장 설득력 있게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상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고 알릴 수 있는 자유의 메신저이며, 다음 세대들에게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심어줄 수 있는 영적 거목들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축복은, 이 땅에서 아낌없는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우리가, 저 땅에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채 신음하는 내 동족을 위해 거침없이 복음의 목소리를 높여 외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우리 미주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 공동체에게 맡기신 거룩하고도 준엄한 ‘시대적 사명’이라고 확신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세상의 어떤 거대 정부나 탁월한 정치가의 지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골방에서 눈물로 무릎 꿇는 교회, 고통받는 형제를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성도,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과감히 행동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기도의 벽돌을 쌓아 올릴 때 마침내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세계에 흩어놓으신 디아스포라 백성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며,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한반도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새벽의 부르심은, 오늘도 태평양을 건너 우리의 잠든 영혼을 향해 거세게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