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뽕나무열매 오디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뽕나무열매 오디

일제강점기 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을 다녔다. 그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봄이 가고 첫여름이 오면 앵두며 오디가 열렸다.

우물가에 탐스럽게 열린 앵두는 빨간색으로 나무를 온통 뒤덮었다. 나는 앵두가 익자 그것을 따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콤달콤한 앵두 맛은 간식거리가 없던 그 옛날 일미(一味)였다.


때를 같이하여 오디가 열렸다. 오디는 뽕나무 열매이다. 오디를 충청도 사투리로 '오디게'라고 부른다. 뽕나무가 귀했던 그 시절 우리 마을은 아주 흔했다. 우리 마을의 흙은 사질양토(沙質壤土)이다. 사질양토란 모래가 적당히 섞여 있기 때문에 물 빠짐이 좋아 작물이 잘 자라는 흙이다. 일제가 실크를 양산하느라 누에를 쳤는데 뽕나무를 많이 심어야 했다. 


그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아주 흔하게 열렸다. 오디 맛은 앵두 맛에 비할 바가 없었다. 나는 오디를 먹은 후로는 앵두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앵두를 따서 열심히 나에게 주었지만 먹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매일 도시락에 밥만 싸 가느니 앵두를 싸 가면 어떠냐?”

고 물었다. 나는 창피하다며 반대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은 다른 때보다 묵직했다. 열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일본 선생님이 우리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도 학생들과 같이 교실에서 식사를 하였다.

나는 도시락을 여는 순간 놀랐다. 밥이 아니고 싱싱한 빨간 앵두만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반 애들 보기가 창피해서 도시락 뚜껑을 얼른 닫고 엎드려 울었다.


이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던 담임선생님은 내 곁으로 가까이 와 밥을 먹지 않고 울고 있는 사연이 수상해서

“미야모도 세이 슈(宮本性洙) 군! 왜 밥을 먹지 않고 울고 있니?”

일본식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그리고 도시락을 열었다.


선생님은 그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앵두가 가득히 들어 있는 나의 도시락을 보고 놀랐다. 선생님은 앵두가 무척이나 먹고 싶어 “이 군! 나의 도시락하고 네 도시락을 바꿔 먹자.”

라고 말하고 선생님의 도시락을 나에게 주고 앵두 도시락을 가져갔다. 나는 앵두가 맛이 없어 먹기 싫은데 선생님은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도시락은 밥을 담은 이외에 찬합이란 네모진 그릇에 계란프라이, 김치, 멸치볶음, 장조림 등이 들어 있었다. 나는 점심을 싸 오지 않은 반 애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의 도시락은 반찬이 많아 반 애와 같이 나누어 먹어도 배가 불렀다.

선생님은 앵두를 실컷 먹고, 나는 선생님의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선생님의 도시락을 반환하면서

“선생님!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은 앵두를 잘 먹었다고 말하고 집에 앵두가 많이 열렸느냐고 묻기도 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오늘 점심시간에 앵두를 싸 주어 창피했어요. 다행히 선생님의 도시락하고 바꾸어 먹었어요.”

어머니는 좋아했다.

나는 우물가에 지천으로 열린 앵두를 따 먹느라 조잘대는 내 또래의 여자애들에게

“이 애들아! 너희들 오디 따 먹어 봤니?”


“오디가 뽕나무 열매인 것을 알지만 아직 먹어 보지 못했다.”

“나를 따라오면 오디 열매 맛을 볼 것이다.”

나는 여자애들을 데리고 뽕나무밭으로 향했다. 뽕나무에는 앵두의 10배나 큰 오디가 소담스럽게 열려 있었다. 나는 초록, 분홍, 까만색으로 열려 있는 오디 중 익은 까만색 오디를 한 줌 따 입에 넣었다. 오디의 단맛과 풍미가 입안으로 퍼져 갔다. 여자애들도 오디 맛에 반했다. 


앵두 맛하고 비교가 안 되는 오디 맛에 넋을 잃고 있었다. 여자애들 입안이 오디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오디를 따 먹었다. 그리고 오디를 따로 모았다. 담임선생님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월요일에 어머니가 오디를 도시락에 담아 주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오디 도시락을 선생님에게 주고 선생님의 도시락을 받았다. 선생님은 오묘한 오디 맛에 반하고 말았다. 앵두의 허접한 맛과는 상대가 안 되는 오디 맛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오디라고 했다. 일제가 처음 심은 뽕나무에서 열린 오디이기 때문이다.


오디 맛에 반한 선생님은 도대체 이런 열매가 어느 나무에 열리느냐고 물었다. 나는 실크(비단)를 만드는 뽕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라고 했다.

나는 그 후 오디를 따서 자주 선생님에게 선물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처음 실크를 짜기 위해 뽕나무가 이 땅에 들어오고 그 열매인 오디가 세상에 선보인 때의 일이다.

나는 지금도 오디의 달달한 그 맛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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