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 ⑤통일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하라

전문가 칼럼

[박상원 기드온칼럼] ⑤통일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하라

「통일은 이미 시작된 과정이다」 ⑤통일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하라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강단과 무대 위에서 저마다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해 거창한 통일의 청사진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의 빚진 자 된 심정으로, 통일을 외치는 이 세대의 성도들과 교회를 향해 언제나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이 무거운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기적으로, 내일 아침 당장 저 베를린 장벽처럼 휴전선이 무너지고 통일이 찾아온다면, 과연 우리는 그 북녘의 영혼들을 온전히 품어낼 준비가 정말로 되어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과 심지어 성도들조차도 이 질문 앞에 서면, 당장 눈에 보이는 천문학적인 자금의 경제적 손실이나 복잡한 법적·제도적 통합의 매뉴얼만을 서둘러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19년 동안 사선의 경계에서 선교 현장을 지켜온 제가 가장 가슴 졸이며 두려워하는 과제는 차가운 물질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는 과연 저 철장 속에서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일신 독재 체제 아래 숨 쉬어온 북한 주민들의 깊은 내면의 상처와 정신세계를 단 1%라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곁에 두고도 외면해 온, 통일의 마중물로 먼저 보내주신 우리 곁의 탈북민들의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습니까?


지나온 세월 동안, 사선을 넘어 이 땅에 정착한 수많은 탈북민 동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하면서, 제 영혼에 가해진 가장 큰 충격은 따로 있었습니다. 70년의 분단은 생각보다 너무도 잔인해서, 비록 한 피를 나눈 단일 민족이고 겉으로는 같은 한국어를 고스란히 구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내면과 가치관은 우리와 너무도 이질적이고 다르게 변해버렸다는 냉혹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태어나 자라며 온몸으로 체득한 삶의 경험이 우리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호흡하던 문화가 달랐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인생의 가치관의 척도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심지어 남과 북이 똑같은 언어의 단어를 입술로 내뱉으면서도, 정작 그 단어 이면에 담긴 속뜻과 뉘앙스는 서로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오해와 상처의 장벽을 쌓는 비극적인 경우를 수없이 목도했습니다.


장벽이 무너진 통일 한국 이후에 우리에게 닥쳐올 가장 거대하고 두려운 재앙은 차가운 법조문의 제도 통합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다르게 자라온 두 부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영적인 통합’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낯선 남한 땅과 미주 대륙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탈북민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내 안의 선교적 교만함을 철저히 깨부수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겸손히 한 가지 절대적인 진리를 배웁니다. 그들에게 우월한 자의 시선으로 물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펴기 전에, 자라온 그들의 아픈 삶의 서사를 가슴으로 먼저 ‘이해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들을 단지 우리가 구제하고 동정해야 할 불쌍한 난민의 프레임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가올 복음 통일 한국의 새 시대를 함께 어깨를 걸고 눈물로 개척해 나갈 고귀한 ‘하늘의 동역자’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특히 사선을 넘어 자유를 찾은 이 땅의 젊은 탈북 차세대들은, 향후 장벽이 무너진 통일 이후의 북녘 땅을 재건할 때 그 어떤 세상의 박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파괴력 있고 중요한 영적 교두보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 폐쇄된 북한 사회의 생리와 주민들의 눈물 어린 속사정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치열하고 화려한 남한 사회와 자유 세계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해 낸 영적 융합형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흑과 백, 두 개의 거대한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고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들인 셈입니다.


어쩌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통일을 거창하게 외치기만 하고 정작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미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통일 이후의 황무지를 기도로 재건할 거룩한 하나님의 군대들을 우리 곁에 먼저 보내어 세워가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질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영적으로 깨우는 사역은 한반도의 생사가 걸린 절대적인 과제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은 분단의 아픔도, 통일의 당위성도 경험하지 못한 세대입니다. 그러기에 과거 패러다임에 갇힌 낡은 민족주의적 감상이나 강요된 억지 구호로는 그들의 굳어버린 가슴을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영혼의 자유와 보편적 인권의 가치, 성경이 말씀하는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절대 가치,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존엄성의 숭고함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엮어 선포할 때, 다음 세대의 가슴은 마침내 거룩한 울림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통일은 조상들이 남겨놓은 골치 아픈 과거의 숙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거룩하게 완성해야 할 미래의 영광스러운 ‘하늘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통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교육’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망각의 역사에 대항하는 거룩한 선교적 ‘출판’의 사역이 일어나야 합니다. 저 처절했던 고난의 역사와 신앙의 순교자들의 핏빛 ‘증언’이 끊임없이 기록되고 선포되어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겪었던 눈물 어린 역사의 ‘기억’을 다음 세대의 영혼 속에 고스란히 전수하는 거룩한 바통 터치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피 묻은 고난의 조국 역사를 부끄럽다고 잊어버리는 순간, 그 역사를 향해 마땅히 짊어져야 할 거룩한 영적 책임감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밤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마다, 성령 안에서 장벽이 무너진 통일 이후의 아름다운 한반도의 교정들을 믿음의 눈으로 그리며 거룩한 상상에 잠기곤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상봉의 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하늘의 자원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넘쳐나는 자본이나 화려한 빌딩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70년의 세월 동안 서로를 향해 증오의 칼날을 겨누며 살아온 남과 북의 영혼들이 마주 앉아 가슴을 열 수 있는 기적 같은 ‘신뢰의 회복’일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처절한 피눈물의 ‘용서’가 필요할 것이며, 자라온 아픔을 품어주는 태평양 같은 ‘이해’의 가슴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이 유일한 해답입니다. 복음은 원수 된 자의 손을 잡게 하여 피를 나눈 형제로 재창조하는 우주적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수십 년간 썩어 문드러진 가슴의 깊은 상처를 단숨에 흔적도 없이 치유하시는 하늘의 신령한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완전히 깨어져 산산조각 난 인간 공동체를 성령의 띠로 완벽하게 회복시키시는 유일한 신적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한반도의 통일을 단지 정치가들이 기획하는 단순한 국가 차원의 경제적 프로젝트로 격하시키는 세상의 논리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우리가 목숨 걸고 부르짖는 ‘복음 통일’은 허물어진 영혼을 고쳐내고 사람을 살려내는 거룩한 ‘영적 회복의 대서사시’입니다. 모진 세월의 상처를 십자가의 보혈로 흔적 없이 치유하는 신성한 성화의 과정입니다. 끊어졌던 신뢰의 다리를 예수의 사랑으로 다시 촘촘히 쌓아 올리는 눈물겨운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새벽의 준비는 장벽이 무너진 통일 이후에 허둥지둥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분단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바로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성도들의 삶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곁에 외롭게 서 있는 탈북민 동포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가슴에 품어내는 일, 우리의 자녀들에게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피눈물을 가르치며 거룩한 다음 세대로 세워내는 일, 저 차가운 지하 토굴에서 숨죽여 예배하는 북녘의 형제들을 위해 매일 밤 골방의 제단을 기도의 향연으로 채우는 일, 그리고 조국이 지나온 뼈아픈 고난과 순교의 역사를 잊지 않고 가슴 깊이 새기며 기억을 전수하는 일. 이 눈물겨운 삶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바로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가장 완벽하고도 거룩한 ‘통일의 준비’입니다.


통일은 어느 날 우연히 행운처럼 갑자기 완성되는 요행이 아닙니다. 오늘 가장 어두운 분단의 밤하늘 아래서, 눈물로 기도의 새벽을 준비한 거룩한 성도들의 무릎이 마침내 찬란하게 떠오를 내일의 통일 한국의 새벽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모진 바람이 불어오는 분단의 일상 속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영혼의 닻을 내리며 변함없이 선포합니다. 통일은 단회적인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역사의 주관자 여호와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눈물을 품고 오늘을 살아내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마침내 이루실 복음 통일의 찬란한 새 역사를 가장 완벽하게 완성해 가고 계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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