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운"을 믿습니까?(2)
<지난 호에 이어>
상대방이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가 있다.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알 필요가 없는 남의 사생활이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게 된다.
남의 사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이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며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얼마나 바른말 하는 사람인지 아느냐고 자랑스럽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얘기를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정신 나갈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지인일 경우 너무 속상하다.
“운”이 필요한 사람의 정신적 태도는 긍정적인 기대를 가져야 한다.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마음가짐은 새로운 좋은 기회가 보인다.
“운”이 필요한 사람은 부드러움과 유연함으로 어려운 일이 와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마음에 독을 품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인 “운”이 오기가 쉽다.
심리학에 보면 감사하는 습관과 행복감은 낙관성을 높여 행동을 적극적으로 만들 수가 있다.
삶의 자리에서 항상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지라도 곧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과 이만해도 다행이야! 더 나아질 거야!라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의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더 잘 찾아올 수가 있다.
새로운 기회가 남들이 보기에는 “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오랫동안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연구를 했다.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기회를 잘 포착한다.
직감을 적절히 활용한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불운한 상황을 겪어도 새로운 기회로 생각한다.
운이 오는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많다. 새로운 정보나 배움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기가 쉽다. 그 새로운 기회가 “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노력의 결과다.
실패한 자리에서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운”이 오기가 좋다.
실패를 끝이라고 생각치 않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운”을 불러들인다.
“운”은 단순히 타고난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 습관에 의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축구선수 손홍민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훌륭한 아들을 길러낸 그의 아버지 손웅정 님도 존경한다.
손 선수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절대로 “혜성”같이 나타났다는 말은 없습니다.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에게는 수많은 노력과 열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어떤가?
내 삶을 열심히 살아왔는데 “운”이 안 따른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무엇이 내게 필요한가 연구해 보고 바꾸어 나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