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교회] 행복한 황혼의 가을 - 시애틀한인 교회칼럼
11월, 2020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수첩에 빼곡히 쓰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우리 학교의 자랑”이라는 글이 특선으로 뽑혀서 게시판에 오랫동안 걸려있기도 했는데 아마 제목이 좋아서가 아닌가 싶다. 피아노도 치고 싶었고 고전무용도 배우고 싶었고 학교대표로 덕수궁에 가서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입선도 했었다.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나의 학창시절은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 속에 허덕이며 많은 꿈을 잃었다. 학창시절의 꿈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서 영화 속에 나오는 화려한 파티를 하면서 살고 싶은 허황한 꿈을 꾸었다. 하루아침에 젊은 과부가 되시고 6남매를 홀로 길러야 하는 나의 어머니는 매일 새벽기도와 심야기도를 하시면서 집에 개척교회를 세우셨고 화려한 세상 꿈에 젖은 둘째 딸을 전도사 아내로 만드셨다. 집에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더라면 아마 나는 사모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사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교회에서 가시 노릇이나 하는 교만한 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때로 나를 진단해 본다. 아니면 성령 충만을 받아서 고생하는 사모님을 잘 위로해 주는 여집사가 되었을까? 그렇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 싶다. 처음에 믿음도 없이 주의 길을 가면서 옛날이 좋았다고 남편과 어머니께 불평과 원망을 많이 했었다. 불평할 때마다 징계의 채찍을 맞으면서 48년을 살아오며 지금은 가장 좋은 친구이신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싱싱한 초록색 울창한 숲들도 아름답지만 빨갛게, 노랗게 단장한 숲들은 황홀하다. 윤기가 흐르는 젊은 초록색 잎의 영양이 다 빠져나가면 물기가 없어지고 바짝 마르고 노랗게, 빨갛게 변하고 땅으로 떨어지게 되고 사각사각 발에 밟히고 부서진다. 그것을 불에 태우고 재를 만들거나 썩히면 나무뿌리에 좋은 거름이 된다. 그리하여 단풍은 제 몸을 태우고 썩혀서 나무의 거름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새벽에 밝은 해가 뜨는 모습도 장관(壯觀)이지만 또 서쪽으로 질 때의 모습도 신비할 정도로 아름답다. 어둠 속을 헤집고 새벽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밝고 빛나는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를 마감하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황홀한 붉은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안식할 소망으로 평화가 깃든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너무나 예쁘고 소중하여 눈동자같이 지키고 잘 보호하며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며 정성을 다해 기른다.
사람이 늙고 몸이 부자유하게 되면 누군가가 돌보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데 갓난아기가 소중한 보물로 귀하게 대접받는 것처럼 그렇게 소중하게 대접받는 노년이 되기를 모두가 소원한다. 소외당하지 않고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노년(老年)이 될 수는 없을까? 그것이 앞으로 장수하는 노년들의 큰 과제다. 겉은 노쇠하고 연약하나 속사람은 강건하여 항상 즐거워하며 밝게 살면서 남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아직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황폐한 노년의 슬프고도 쓸쓸한 삶이 되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연약하여 떨어지는 붉은 나뭇잎도 그렇게 아름답거늘 사람의 기운이 진하여 떨어지게 될 때에는 더욱 아름다운 교훈과 사랑과 그리움을 남기고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노년의 향기는 ‘그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가’로 판가름이 날 것이고 자기의 육신도 그의 인생을 말해 줄 것이다. 술과 분노, 음란, 탐욕, 시기, 교만, 악한 생각으로 찌든 인생의 종착역은 참 비극적이고 슬플 것이다.
“그의 인생은 그의 얼굴에 쓰여 있다. 40세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라는 이야기를 아브라함 링컨이 했다고 했던가? 한 세대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인생은 못된다고 할지라고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저 영원한 고향에 갈 소망이 넘치는 행복한 사람은 누구나 다 될 수가 있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공평하신 은혜다. 우리 인생의 황혼이 가족에게, 적어도 내 자녀들에게만이라도 귀한 교훈이 되고,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보여주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녀를 불효자로 만드는 것도 부모의 책임으로 노년에 늙고 병들어 바쁜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원망과 불평으로 보내거나 치매로 집안을 온통 어둠과 절망 속으로 빠트려서는 안 될 텐데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니 안타깝다. 오랜 세월 병든 부모로 인해서 자식이 죄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도록, 부모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분이신 것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화사한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불면 떨어지는 붉고 아름다운 낙엽을 보며 ‘나의 인생의 황혼이 절대로 자녀의 짐이 되지 말고 아름답게 살다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질 수는 없을까?’라며 그렇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자기 말을 하고 싶어한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그 사람은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격자가 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이야기를 잘 듣고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서 역사상 최고의 지혜의 왕이 되었다. 노년이 되면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없고 자식들도 모두 바쁘고 늙은 부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므로 모두가 외롭고 고독하다. 아니 젊은 사람들도 속 시원하게 자기의 말을 들어줄 믿음직한 사람이 없기에 다 고독하고 외롭다. 그래서 주님은 미리 아시고 나에게 “다 이야기해라. 내가 다 들어 줄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범사에 감사해라.”라고 하셨다. 당신은 너무나 고독하게 홀로 살아가야 하는 노년이 되기 전에 주님을 참 좋은 친구로 만들어서 온갖 말을 이야기할 수 있는 행복한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슬프고 억울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만 있어도 당신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그분은 나의 온갖 이야기를 다 듣고 위로해 주시고 품에 안아주시고 내 속에 평강을 강같이 흘러넘치게 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