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칼럼] 김수영 이야기 4

전문가 칼럼

[김수영칼럼] 김수영 이야기 4

지금도 가끔 옛 추억에 젖을 때면 그 시절의 ‘삼총사’가 생각난다.

1990년대 초,  신입 중개사 모집을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 날 사무실에 훤칠한 키에 잘생긴 젊은 신사차림 세 명이 나란히 찾아왔다. 모두 UW를 졸업하고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젊은 패기가 넘치는 신입들이었다.


각자 본명이 있었지만 자신들을 ‘유비, 관우, 장비’라고 불렀다.

“저희 셋이 함께 입사해서 같이 배우고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그 모습이 당차고 신선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와 삼총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 6개월 동안 나는 정성을 다해 현장 중심의 교육(On-the-Job Training)을 했다. 세 사람도 열의를 가지고 잘 따라왔다.

내가 신입 중개사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한인 부동산업계에서는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사업체나 상업용 부동산 거래 현장에 뛰어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체 하나를 거래하는 데도 살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었는지, 매출과 순이익은 어떻게 확인하는지, 리스와 각종 계약 조건에는 어떤 위험이 숨어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특히 한인 중개사는 한인 바이어와 셀러 사이에서 거래를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어와 문화가 같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그만큼 중개사의 설명과 판단을 믿고 의지하는 경우도 많아 책임 또한 무거웠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

쉬워 보이는 일일수록 위험은 작은 세부사항에서 생긴다.

주택과 사업체, 상업용 부동산은 모두 부동산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실제 거래의 성격과 요구되는 전문성은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신입 중개사들에게 가능하면 먼저 주택 거래를 충분히 경험하고 기본을 익힌 뒤 사업체나 상업용 거래로 영역을 넓혀가기를 권했다.

적어도 3년 정도는 주택 거래를 하면서 계약서와 협상, 감정과 인스펙션, 고객 관리, 금융과 에스크로, 그리고 거래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면허증은 일을 시작할 자격을 주지만, 경험까지 함께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비’ 중개사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유, 손님 부부를 차에 태우고 사업체를 보여드리러 갔는데요. 안 사면 그만이지, 어찌나 까다롭게 따지고 묻는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두 분 다 내려놓고 왔습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뭐라고요? 손님을 길에 내려놓고 왔다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중개사는 단순히 물건을 보여주고 바이어와 셀러를 연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선의 가이드여야 한다.


그런데 고객을 길에 내려놓고 왔다니….

삼국지의 장비가 성질이 급했다지만,  우리의 ‘장비’가 정말 장비일 줄이야.

그리고 또 비슷한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결국 나는 장비를 불러 말했다.


“다시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서 Public Speaking을 배우고 오세요.”

단순히 말하는 기술만 배우라는 뜻은 아니었다. 사람을 대하는 매너와 에티켓, 상대의 말을 듣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다시 배워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UW까지 졸업한 장비에게는 그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나는 당황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보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본인이 바뀌려는 노력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 일하기 어렵습니다.”

장비는 며칠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웃는 얼굴로 나란히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마도 지난 며칠간 서로 의논을 나눈것 같았다. 

“우리는 삼총사로 함께 들어왔습니다. 장비를 내보내면 우리도 같이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셋이 계속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사실상 세 사람이 함께 내게 던지는 최후통첩처럼 들렸다.


신입 중개사 모집을 막 시작하던 때였다. 6개월 넘게 정성을 들여 가르친 시간과 노력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불법이나 부정, 부도덕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내가 원칙을 굽힌다면 앞으로 이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나는 마음을 굳혔다.

“아직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보다 세 사람이 뭉쳐 회사의 원칙을 바꾸려고 한다면 앞으로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합시다.”


그렇게 세 사람의 면허를 한날, 같은 시간에 모두 Release 해주었다.

그날 종일 나는 사무실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처럼 일을 했다.

침통한 기분을 숨기며  집에 돌아온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며칠을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사람을 내보낸 첫 경험이었다.


화가 나서 운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고 원통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다. 6개월 동안 가르친 시간이 아까워서만도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잘해보고 싶었던 내 마음까지 한꺼번에 무너진 것 같았다.

몇몇 인생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회사를 하다 보면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긴다. 사람에게 흔들리지 말고 잘 견디면서 회사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다 알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사람을 뽑는 것보다 때로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더 어려웠다.


삼총사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얼마 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신입 중개사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삼총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너무나 순진하고 순박한, 키가 큰 젊은 남성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 저쪽에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얼 하세요?”

내가 물었더니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미국 손님들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외우고 있습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런데 부동산 중개사 시험은 영어로 어떻게 합격했어요?”

그의 대답은 더 놀라웠다.

한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험을 볼 때 모르는 문제는 연필을 굴려 답을 골랐고, 미국에서 중개사 시험을 볼 때도 그렇게 해서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정말이에요?”


“네. 정말입니다.”

창피한 마음이 있었으면 감출 만도 한데 너무나 순진하고 해맑게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할 말을 잃었다.

영어가 부족해 미국인 에이전트나 셀러를 만났을 때 사용할 말을 하나하나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박함만큼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만큼은 연필을 굴려 정답을 고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다른 곳으로 옮길 때까지 우리 회사에서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하고 떠났다.

벌써 3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때 그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유비, 관우, 장비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연필을 굴려 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던 그 순박한 청년은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돌이켜보면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Helix Real Estate를 거쳐 간 중개사들 가운데 10여 명은 한인사회의 여러 단체에서 회장을 맡는 등 과거와 현재에 걸쳐 지역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또 지금까지 100여 명의 중개사들이 우리 회사를 거쳐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인정받으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뿌듯해진다.

처음에는 내가 그들을 교육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함께 배우고 성장했던 것이다.

삼총사를 떠나보내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었던 초보 사장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르치고, 때로는 떠나보내면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표정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짐작할 때가 있다.


미안해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중개사에게 오히려 내가 먼저 면허증을 벽에서 떼어 사인을 하여 주고  웃는 얼굴로 작별할 만큼 세월도 흘렀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어렵고, 태도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변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것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회사를 운영하며 남긴 가장 큰 자산은 건물도, 계약서도, 수많은 거래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삼총사도 내게 사람을 가르쳐 주었고, 연필을 굴리던 순박한 중개사도 내게 사람을 가르쳐 주었다.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회사로 떠났던 사람들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가르쳤던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 각자의 자리에서 ‘에이스’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오랜 세월 부동산 일을 해온 나에게는 조용하지만 꽤 자랑스러운 성적표다.

처음에는 내가 사람들과 같이 하며 감독과 교육을 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도 안목이 필요하고,

함께 가는 데는 신뢰와 의리가 필요하며,

때로는 놓아줄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은 거래를 했느냐보다

그 길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함께 성장했느냐가 아닐까.

오늘도 지난 일들을 회상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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