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어머니 손칼국수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어머니 손칼국수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이다. 여름방학에 집에 와 일손을 도운 일이 있다. 그날은 마침 품앗이로 우리 집 논을 매는 날이었다. 나는 품앗이 일꾼과 함께 논매는 어려운 일을 몸소 체험하였다.

지금은 제초제(除草劑)를 주어 한 번도 안 매는데 그때는 미련하게 세 번씩이나 매었다. 그러니 농촌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삼복더위에 논에 들어가 몸을 바짝 구부리고 호미로 논바닥을 긁으며 잡초(雜草)를 뽑고 논을 매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선글라스(sunglass)가 없던 그 옛날 뾰족한 벼 잎이 얼굴과 목을 찌르면 심히 따가웠다. 잘못하면 눈을 찌를 수도 있었다.


태양의 복사열(輻射熱)로 더워진 논바닥은 뜨뜻하다 못해 뜨거웠고 숨이 턱턱 막혔다. 더운 한낮이면 뜨거운 물에 데어 개구리가 쪽쪽 뻗어 죽어갔다. 그렇게 더워야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만큼 벼는 고온 작물이다. 이곳 시애틀은 덥지 않아 벼농사를 짓지 못한다.


지금은 제초제 대신 논에 오리를 방사(放飼)하여 오리로 하여금 벌레를 잡아먹고 풀을 뜯어 먹어 논을 매게 한다. 이를 '오리농법'이라고 한다. 논매는 일이 끝나면 다 큰 오리를 내다 판다. 이 역시 농가 수입이 되었다.


또 '우렁이농법'도 있다. '새끼우렁이'를 모낸 후 논바닥에 뿌린다. 그러면 우렁이가 크면서 풀을 뜯어 먹으며 논을 맨다. 커서 논을 다 매면 잡아서 시장에 판다. 이 역시 농가 수입이 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었다.


일꾼들은 아침과 점심 사이에 오전 새참을 먹고, 점심과 저녁 사이에 오후 새참을 먹는다. 새참은 일을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먹는 일종의 간식(間食)이다.

새참은 지금처럼 우유 두유 음료수와 빵, 커피는 없고 그 대신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막걸리가 필수적이었다.


바깥일을 하는 일꾼들 못지않게 안에서 새참을 준비하는 누이동생과 어머니가 더 수고를 하였다. 오늘 나를 비롯하여 7명(名)의 품앗이 일꾼들을 먹일 새참은 '호박부침개'이다.

나는 논을 매다가 집으로 가 새참 만드는 일을 도왔다. 누이동생은 싸리울타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재래종 조선애호박을 따왔다.


나는 맷돌로 농사지은 밀을 갈아 가루를 내야 했다. 밀가루가 귀한 때였다.

맷돌은 지금의 믹서(mixer)의 조상(祖上)격으로 곡식을 가는 데 쓰이는 가구이다. 둥글넓적한 돌 두 개를 포개놓고, 그 위에 뚫린 구멍으로 통밀을 넣으며 손잡이를 돌려서 간다. 이 작업은 힘이 들었다. 맷돌에 간 바스러진 밀가루를 고운 체로 쳐서 호박부침개를 부쳤다.


어머니는 나무 도마 위에 애호박을 놓고 채 썰기를 시작(始作)하셨다. 호박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능숙한 어머니의 손놀림이 도마 위에서 칼춤을 추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채 썬 애호박이 수북이 쌓여갔다. 양파도 호박 모양으로 채 썰었다. 호박부침개의 재료는 의외로 간단하여 호박, 양파, 밀가루와 약간의 소금과 물이 전부였다.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으면 대형 프라이팬이 되었다. 깨끗이 닦은 후 밑에서 불을 때고 들기름을 쳤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집 안 가득히 진동했다. 미각을 자극하였다. 명절(名節)이나 집의 특별한 날에만 맡아보는 냄새였다.


재료를 숟가락으로 조금씩 떼어 솥뚜껑에서 부쳐냈다. 기름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부침개가 익어갔다. 나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시장하였기 때문이다. 익어가는 호박부침개를 호호 입으로 불면서 시식(試食)하였다. 어머니의 손맛은 여전했다. 나는 어머니애호박부침개를 좋아한다.


나는 완성된 부침개를 모두 광주리에 담아 지게에 지고 들로 갔다. 누이동생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내 뒤를 따르고, 우리 집 삽살개는 누이 뒤를 졸랑졸랑 따라갔다. 이러한 지게 짐, 술 주전자, 우리 집 개의 세 행렬(行列)은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모습이었다.

버드나무 밑에다 새참을 내려놓았다. 일꾼들이 모두 논에서 나와 콸콸 솟아나는 쌍둥이 샘에서 몸을 씻었다. 샘물은 시원하다 못해 춥다고 했다.


어머니애호박부침개를 맛있게 잘도 먹었다.

오후 새참은 어머니손칼국수였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점심을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손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밀가루 가는 일은 내 몫이었다. 맷돌로 간 밀을 어머니는 체로 쳤다. 이 고운 밀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을 하였다. 체로 친 밀가루는 희지 않고 갈색을 띠었다. 밀 껍질이 맷돌에 갈렸기 때문이다. 흰색 밀가루보다 맛이 더 좋았다.


밀가루 반죽은 힘을 들여 쫄깃쫄깃하게 해야 맛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반죽이 끝나고 잠시 있다가 주먹만큼씩 떼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밀대로 둥글게, 넓게, 되도록 얇게 몇 번이고 쥐락펴락한 후에 송송 썰어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육수에 넣고 끓였다. 끓는 양은솥과 콩밭열무김치를 지게에 지고 들로 갔다.


대추나무 도마는 아버지가 예산 5일장에서 사오셨다. 단단하여 도마 중에 제일로 쳤다. 어머니는 이 도마 위에서 칼로 파도 썰고, 마늘도 짓이기고, 생선도 자르고, 고기도 썰고, 호박을 채 썰고, 무, 배추 등 김장용 채소를 썰었다.

나는 누이동생과 같이 아직도 펄펄 끓는 어머니손칼국수를 일꾼들에게 퍼주었다. 일꾼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무김치와 함께 다들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기계로 만든 칼국수보다 그날 새참에 먹은 ‘어머니손칼국수’가 맛이 더 있는 이유가 있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되도록 얇게 민 갈색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썰어서 만들므로 그곳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배어 있고, 갈색 밀가루에는 현미처럼 영양분이 많은 밀 껍질이 들어 있어 감칠맛이 났기 때문이다.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