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칼럼] (블루제이 이야기 5) 별난 인연도 인연이다

전문가 칼럼

[김수영칼럼] (블루제이 이야기 5) 별난 인연도 인연이다

힐릭스 부동산을 시작한 지 2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 문을 열고 장군처럼 건장한 두 남성이 들어왔다. 동부에서 이미 활동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라 부동산 경력이 많은 간부급 베테랑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말 그대로 ‘장군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4성 장군이셨는데 당시 이탈리아 대사로 재직하고 계셨다. 입사한 지 몇 개월 뒤 아버지를 만나러 이탈리아에 다녀왔다며 바티칸에서 교황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집안 배경만 놓고 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매우 착한 사람이었다.


어느 한가한 날,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군 아버지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고 자식 교육도 군대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공부보다는 장난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였다.

중학생 무렵에는 가방 하나를 등에 메고 혼자 부산과 제주도까지 전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마지막 날 새벽 무렵, 살며시 발뒤꿈치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빵!”

총소리가 났다.


자지러지게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총알이 바로 엄지발가락 앞에 떨어졌다고 했다.

권총으로 아버지가 쏜 경고탄이었다.

‘와, 이 집은 자녀 교육에 총알이 날아오는 집이었구나.’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공부는 안 하고 가출까지 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며 화가 난 아버지는 막내아들을 옛날식 변소에 세워두는 벌까지 주었다고 한다. 어린 아들은 구더기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무릎까지 발갛게 부어 올라오는 공포 속에서 한동안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던 경험까지 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온 가족을 데리고 미국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미 동부에서 여행을 모두 마친 뒤, 장군 아버지는 막내아들을 앉혀놓고 3천 달러를 건네며 말했다고 한다. “너는 사람이 되려면 고생을 해봐야 한다. 이 돈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스스로 살아남아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막내아들을 홈스테이 가정에 남겨둔 채 가족들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들은 하루아침에 미국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의 나이 중학교 2학년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동네 집들의 페인트칠도 하며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외롭고 힘든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 당시 그의 아내는 한국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미 육군 장교 대위로 복무하고 있었다.

몇 년 뒤 그는 우리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홀연히 동부로 떠났다.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난 어느 날 LA에서 열린 부동산 세미나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 옛날 자유분방했던 ‘장군의 아들’은 어디로 가고, 어느새 의젓한 중년 신사가 되어 자신의 부동산 회사를 차리기 위해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장군 아버지의 교육 방법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을 가르치는 가장 무서운 선생님은 결국 세월과 삶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회사를 운영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벨뷰로 이사 오는 상사 주재원, 항공사 직원, 총영사관 관계자들이 시애틀로 부임하면 임시로 살 집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다.


사실 부동산 중개사들에게 임대주택을 찾아주는 일은 선뜻 맡으려 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역시 고객 서비스이며 워싱턴주에 새로 이사하는 분들에게 지역을 소개하는 봉사라고 생각했다. 특히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학군까지 살펴가며 벨뷰와 주변 지역의 집들을 열심히 찾아주고 학교 입학까지 도와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럽 근무를 마치고 시애틀로 부임한 한 고위 공직자 가족이 벨뷰에 집을 구해 달라고 했다.

조건은 월세 3천 달러 이하.

당시에도 그 가격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 벨뷰였다.

그런데 집을 볼 때마다 사모님의 요구 사항이 하나씩 늘어났다.


“이것도 바꿔주세요.”

“저것도 고쳐주세요.”

“여기는 전체를 리모델해야겠네요.”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집을 빌리는 것인지, 새로 한 채를 짓는 것인지 부동산 임대와 구매의 차이를 전혀 인지하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집을 찾는 편이 좋습니다. 집주인이 이 모든 것을 고쳐주거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눈치였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생활 방식과 미국의 임대 문화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예전에 함께 일했던 ‘장비’ 생각이 났다.

‘아… 사람을 만나다 보면 장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구나.’

집 보기를 모두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원하시는 수준의 집을 찾아드리기에는 저의 실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분께 부탁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몸에 밴 생각과 문화를 내가 짧은 시간에 설명하고 바꾸려 하기에는 서로에게 너무 힘든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쯤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얼마 후 그 가족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직원들이 모인 파티에서 누군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가라오케에서 대중가요를 부르자,

“왜 그런 유행가를 부르느냐, 클래식을 불러야지.”

했다고 한다.


클래식을 전공한 분이었다니 그분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기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람의 품격은 무엇을 부르느냐보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도 즐겁게 들어줄 수 있는 배려와 마음의 폭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장군의 아들도, 그 가족도, 나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모두 한때 내 삶의 길목에서 만나 잠시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세월은 흐르고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여 보면 이제야 알아져 가는 것 같다.

좋은 인연에게서는 따뜻함을 배웠고,

어려운 인연에게서는 사람을 배웠으며,

별난 인연에게서는 세상의 넓이를 배웠다.


인연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물렀다가,

세월이 흐른 뒤 한 줄의 이야기가 되어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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