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재능/배경이 없게 태어나 공부를 못하나?“
지난주 필자가 출석하는 하나교회에서 창립 7주년을 기념하는 부흥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 잘 알려진 목사님을 초청해 말씀을 들었는데, 본 칼럼에 적절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잠깐 독자들과 함께 일부를 나눈다. 다른 곳에서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나누었지만,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소개한다.
그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재능을 주시는 점에서 공평하지 않으시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이어서 평생을 별 걱정 없이 잘 지낸다. 다른 이들은 흙수저로 태어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바쁜 경우도 있다. 특히 이런 차이는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서 현저하다. 뇌성마비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시는 분이 “하나님은 왜 저에게 이런 몸을 주셨어요?”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공평하다고 소리 높여 주장할 수 있을까?
강사 목사님도 소아마비로 한 발에 힘이 없어 잘 걷지 못하시는 분이어서 더 공감이 갔다. 물론 이 두 그룹 사이에 많은 다른 형태의 삶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이 만일 계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현재의 상황을 허락하셨거나 그리 살도록 지정하셨다면,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처사는 분명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화가 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어느 고을의 주인이 타지로 떠나며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다른 액수의 돈을 맡긴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한 달란트는 화폐 단위로 약 20년간 일상 노동자의 임금, 현 시세로 약 1밀리언), 다른 이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는데, 따로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라는 당부는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주인이 돌아와 회계를 할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 종잣돈으로 장사를 해 다섯 달란트를 남겨 돌려드렸고, 2달란트 받은 종도 같은 열심으로 일해 2달란트를 남겨드렸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이는 땅에 묻어 놓았던 한 달란트를 파내서 주인에게 돌려드린다.
많은 다른 해석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재능에 따라 준 돈이니, 당연히 귀결된 결과로 볼 수도 있고, 작게 받은 이의 불평을 편들 수도 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능력/재능/건강의 양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아 다르고 불공평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은 다른 액수에 따라 다른 칭찬을 받은 것은 아니다.
즉, 똑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동일한 칭찬을 받았으니, 돈의 액수나 성공의 크고 작음이 아닌 얼마나 충성되이 성실하게 주어진 것을 활용해 장사를 하고 삶을 살았는지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많은 받은 자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름은 분명하다.
위의 목사님께서 들은 예는 아니지만,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내용의 비유가 누가복음에도 나온다(누가복음 19장). 여기에서는 타국에 왕위를 받으러 떠나는 한 귀인이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같은” 액수인 한 므나(당시의 화폐 단위로 약 100일분의 노동자 품삯으로 현재로 따지면 약 2만 불)씩을 나눠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당부한다.
후에 그가 돌아와 계산을 할 때에, 한 종은 열 므나를 남기고, 어떤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겨드렸다. 다른 어떤 종은 그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귀인에게 돌려드렸다. 여기에서 학생들을 돕는 카운슬러로서, 필자의 관심은 모두가 같은 양의 재능/환경/같은 시간—24/7, 배울 기회를 받은 경우에도 어떻게 그것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경우, 하나님은 대체로 공평하시다. 특히, 민주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거의 같은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정상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으로 공립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최고의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주어지고 많은 경우 가계 소득이 적으면 재정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유덥의 경우 약 30%의 워싱턴주 출신 학생들이 등록금 전부를 보조받고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우리 자녀들이 많은 다른 상황에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어진 기회와 재능을 백분 활용하면 더욱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진다. 위의 비유에서 주인/귀인이 돌아와 회계를 한 뒤, 열심히 일해 남긴 종들에게 한 공통의 칭찬은 더 많이 남겼으니 네가 더 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남긴 자 모두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였다.
반면에, 열심히 일을 하지 않고,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두었거나 수건에 싸 둔 게으른 종들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면 왜 그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 후에, 그것을 빼앗아 열 므나가 있는 자에게 주라 명령하셨다. 주인의 말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여러분은 ‘있는 자’는 무엇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시는가? 아마도 착한 마음으로 성실함과 충실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함일 것이다. 이런 심성이나 노력이 없는 게으른 사람들은 당연히 조금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당연한 말이 아니겠는가? (www.ewaybellevu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