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자유
엘리엇 김 칼럼니스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자유다.
돈이 있으면 하기 싫은 일들 안 해도 되는 자유. 보기 싫은 인간들 안 봐도 되는 자유.
바로 이것이 별 효용가치 없는, 그저 남에게 과시나 하기 위한 천민자본주의적인 저급한 소비를 하찮게 여기며 돈을 성실히 모아야 하는 이유다. ‘Freedom is not free.’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모두 전문직과 고위 공직자로 retire한 몇몇 친구들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그들은 자신의 소재를 지극히 가까운 절친들에게만 살짝 알리고 아내와 함께 홀연히 사라져 은둔생활을 즐긴다. 전번도 SNS도 다 바꾼 친구들도 있다.
유유자적 悠悠自適... 그래서 은퇴(隱退)라 하였던가.
평생을 힘든 일과 보기 싫은 인간들에게 질려본 사람들 만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그냥 개를 데리고 숲속 길을 걷기도 하고, 호수와 강가를 돌아다니며 낚시도 하고, 오디오를 틀어놓고 음악감상 하다가 듣는 이라고는 겨우 시끄럽다고 짜증 내는 아내 옆에서 듣던 곡을 따라 해본다고 악기연습을 하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자기 작품 전시회 같은 행사를 벌리는 건 생각조차도 안하지만 어디든 눈길이 꽂히고 feel이 오는 대로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겨 보기도 하고, 저녁이면 머나먼 하늘 아래로 지는 해와 노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한 친구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사냥 다닐 때부터 물려받은 자기 생애의 첫 총과 평생 사모은 마음에 드는 애총들 몇 자루를 시간만 나면 분해결합 하며 닦고 기름치고 만지작거린다. 어떤 총은 잘 때도 침대 곁에 손닿는데 두고 자야 기분이 좋아 잠이 잘 온다나. 어릴 때 좋아하는 장난감을 껴안고 자던 것과 꼭 같다.
가끔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을 땐 차값도 기름값도 부담 없는 소형 깡통 SUV나 미니밴을 타고 아내와 함께 무작정 정처 없이 떠나고, 집에는 돌아오고 싶을 때나 돌아온단다.
말 통하고 귀찮게 여권 들고 다닐 필요 없는 편안한 미국 땅, 50개 주가 모양이 다 달라서 경치 좋고 가고 싶은 데만 골라 차 타고 돌아다녀도 죽기 전에 다 못 가본다나. 한 친구는 2년 전 Black Friday 때 산 85인치 TV로 유튜브 세계일주 여행을 본 나라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단다. 비싼 돈 주고 고생하며 헬기 타고 안 가봐도 드론으로 찍은 멋진 동영상까지 소파에 누워 편히 감상할 수 있는데 라면서 말이다.
자녀들을 여럿 둔 또 한 친구의 아내는 한창 자라나는 손자손녀들의 해마다 작아진 옷과 컸다고 싫증 난 장난감들을 모으는 게 취미다. 친구들 사이에 별명이 ‘왕성한 번식력’인 이 친구네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는데 자녀들도 부모님처럼 자녀복이 많아서 아직도 나는 그집 손자 손녀들이 다 몇 명인지, 그리고 누가 누구의 애들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맨 위에 벌써 결혼한 손녀부터 꼬맹이 손자손녀들 까지 다 있으니까. 이 집은 명절이나 생일파티 때 가족들이 다 모이면 웬만한 교회 주일예배 때 모인 정도인데 그야말로 옛날 한국 고향동네 장날 같다.
할머니의 총지휘 하에 한참 자라는 손자손녀들에게 형과 언니가 입다가 작아진 옷과 장난감들을 배급하고 나눈다. “이 옷은 작년에 동부 명문 사립대학에 간 사촌 형이 고등학교 때 입던 옷” 하는 식으로 형들과 언니들이 쓰던 물건을 4촌 동생들끼리 나누는 쟁탈전을 벌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일과 명절날은 가족들의 결속과 유대와 전통을 어린 후손들이 기쁨으로 따르고 기다리는 날이 된 것이다.
어른들은 오기 싫어도 그 재미에 맛을 들인 꼬마들이 가자고 졸라대서 항상 조용하던 할머니 집은 북새통이 된다.
‘세상이 나를 잊어주는 기쁨과 고마움’을 마음껏 느끼며 아무도 자기를 '알아봐 주지 않는' 새로 이사간 동네의 쇼핑센터에서 생활에 필요한 식품과 물건들을 산다. 남의 시선이 나를 의식해 주지 않는 바로 이것이 자유의 기쁨이고 자유의 고마움이란다.
깨끗이 샤워를 한 후 새 옷과 새 신을 신고 기쁘고 설레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 나가듯 매일매일의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다.
이제 여생을 즐기는 친구들, 삶의 군더더기를 씻어내 버리는 미니멀리즘. 그동안 나를 포장하여온 형식을 털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것. 남에게 보여지는 것에 쓰던 삶의 에너지를 나의 내면으로 옮기는 것. 이젠 더 이상 소유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낭비하지 않기 위한 간결한 선택의 삶. 이 모든 것이 그들의 뇌라는 하드웨어의 기억세포 memory속에 평생토록 쌓였던, 그러나 이젠 하등 필요없는 쿠키와 오류, 임시파일들을 디스크 정리를 통해 delete 해가는 과정과도 같은 것일까? 평생 혹사하던 머리 속에 맑고 깨끗한 메모리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주고 싶어서이겠지.
세상을 살아오며 다 이루어본,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의 달라진 여유로운 life style을 보면서 나는 느낀다.
“돈과 자유가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