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통일한국목회자포럼과 천문선교회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통일한국목회자포럼과 천문선교회

영등포에 있는 에스더기도운동 금요 철야, 밤 12시 예배에 남편이 설교를 하러 가서 뜨겁게 설교하고 기도하다. 에스더는 매일 밤에 남북통일과 낙태 반대 운동과 동성애 반대 운동을 위해 모여서 기도하는데 참으로 잘 모이고 뜨겁다.


이번 한국 강원도 영월에서 월화수 3일 동안 동강시스타 리조트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에스더 총무 목사님께서 남편에게 가자고 하셔서 곧 미국으로 돌아오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 가기로 했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호텔 앞에서 목회자들이 관광버스 2대를 타고 갔다. 가을이라 낙엽이 떨어지고 노랑, 빨강 단풍이 아름다운 길을 달려 리조트에 갔는데 큰 홀에 사람들이 가득하게 모였고 열기가 뜨거웠다.


각 교회 찬양단이 시간마다 우렁차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인도했는데 너무 은혜스러웠다. 강사님들이 즐겁고 재미있고 은혜로운 설교가 좋았고 에스더기도운동 대표 이용희 목사님의 시간마다 뜨거운 나라 사랑의 합심 통성기도 시간이 감동이 되었다.


앞으로 에스더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매주 금요일에 한국에서 원하는 교회에 찾아가서 같이 남북통일을 위하여, 사회가 변화되는 복음 운동을 위하여 같이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고 하면서 원하는 교회는 신청하라고 광고를 하셨다.


일제강점기에 미국, 영국 선교사님들이 가난하고 비참했던 한국에 오셔서 앞으로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한국이 될 것을 예언하셨다는 고무적인 유튜브도 보여주어서 감동이 되었다.


화요일에 4시간 자유 시간이 있었는데 원주에 사시는 사모님이 집으로 가시면서 근처에 있는 미술관에 가자고 갔는데 미술관은 찾지 못했고 영월에 있는 작은 섬, “왕과 함께 사는 남자” 촬영 장소를 가게 되었다. 한국에 오면서 비행기 속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어 큰 감동을 받았는데 우연히 촬영 장소를 방문하게 되어서 기뻤다.


단종 어린 왕이 이런 시골 유배지에서 살다가 죽음을 당했는데 너무나 그 역사가 참혹했고 영화를 잘 만들어서 세계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 영화 덕분에 이 작은 섬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배를 타고 금방 건너고 그 근처 카페와 식당이 대성황을 이루고 단종의 그 슬픈 역사가 이 마을에 큰 풍요를 가지고 왔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도 다시 한번 그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 목요일에는 부천에 크게 세워진 서울신학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45년 전에 남편이 학감으로, 기숙사 관장으로, 교수로 재직하다가 조종남 총장님의 주선으로 오리건주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유행하던 학생들 데모로 총장님이 바뀌게 되고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고 미국에서 목회하게 되었다.


남편이 서울대학교에 다니다가 은혜받고 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오고 교수가 되었고 신학대학교에 다닐 때에 서울 용산구 산천동 56번지 나의 친정집에서 땅이 닿는 이층 큰 홀에서 기도 많이 하시는 어머니와 은사 집회를 하는 장로님과 남편이 천문성결교회를 개척하였다. 말씀은 신학생 남편이 전하였고 장로님과 어머니는 기도로 목회를 도우셨다.


청년들이 많았고 매주 삼각산에 장로님과 같이 가서 나무뿌리를 뽑기도 하는 기도들을 하였다. 시험이 있거나 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데도 산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하는 무서운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기도 중에 “온 세계에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라는 사명을 청년들이 함께 받고 “천문성결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때 주인집 아가씨였던 나는 사모가 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집에 교회가 세워진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어머니의 기도로 전도사님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1970년에 세워진 개척교회 사모가 되었다.


세 아이를 낳으면서 직장에 다녔고 남편이 유학을 가기 위해서도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1979년에 남편 명의로 산 위의 큰 집을 사서 수리하고 학생들하고 같이 교회를 건축하고 1981년에 미국으로 남편이 유학을 와서 총장이 바뀌고 학교를 퇴직하게 되고 퇴직금을 받아 교회에 헌금하고 교회를 성결교단에 바쳤다.


강화도에서 목회하시던 오빠가 천문교회를 목회하시다가 어머니와 다 같이 미국으로 오게 되고 후임자가 교회를 팔았는데 그 후에 오신 장로님이 오랫동안 법정 투쟁을 해서 찾으셔서 22억 3천만 원을 서울신학대학에 후진을 양성하라고 헌금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학교를 찾아가 보고 위로를 받으라고 하셔서 찾아가게 되었다.


학교가 너무 크게 발전하여 교수가 200명이고 일하는 직원들이 200명이고 외국에서 유학 오는 학생들도 많다고 하고 신학교가 모두 열악한 상태인데 서울신학대학교는 학생들이 넘친다고 한다. 신학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정도 신설하여 큰 학교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총장님이 과거에 남편에게 웨슬리 신학을 배웠다고 하시며 학교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신학교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하시는 꿈을 가지고 계시다.


“천문교회” 이름을 크게 쓴 간판이 있는, 최근에 세운 아름답고 큰 도서관이 있고 손자 같은 어린 학생들이 가득히 다니는 모습이 감탄이 되고 이렇게 “천문교회” 아름다운 간판이 영원히 있게 되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총장님이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너무 감동이 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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