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교회] 소리도 없이 나를 부르는 손자 -시애틀한인 교회칼럼

전문가 칼럼

[오아시스 교회] 소리도 없이 나를 부르는 손자 -시애틀한인 교회칼럼

큰딸이 2세 목회자가 없는 아버지의 목회를 돕고 곁에 살려고 부모 곁을 떠나 필라델피아로 미주리로 공부하러 떠난 지 꼭 10년 만에 의사인 남편과 세 아이들을 데리고 큰 집을 사고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는 동생도 불러서 같이 살면서 달려와 주었다. 나의 노년에 큰딸이 두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와 준 것은 큰 행복이다.

  노년에 절대로 아이들을 맡아서 기르지 말라고 그렇게 인생을 다시 고난 속에 살지 말라고들 한다. 딸이 직장에 나가 아이들을 기르는 할머니들은 꼼짝없이 새로운 육아에 매여 자기 생활이 하나도 없고 고생을 하고 그렇다고 딸과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서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불행한 가정들을 많이 보았다.

  딸은 아이비리그 교육대학원을 나온 수재이지만 세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고 잘 기르려고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육아만 전념하기로 해서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지도 않고 그런 문제가 없다. 딸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남편과 딸이 우리에게 같이 살자고 했는데 서로 따로 살게 된 것도 참 다행이기도 한 것은 같이 살면 글을 써야 하는 내 생활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이 보수도 없는 교회 일을 적극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하기에 이모저모로 내가 아이들을 돌보아주어야 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부담이 아니고 큰 즐거움이다. 눈을 뜨면 내 마음은 아이들에게로 달려가는 것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제는 제법 커서 말을 잘 듣는 4, 6, 8세인 세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을 가거나 어린이 놀이터에 데리고 가서 저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는 것은 내 큰 기쁨이다. 그런데 저들도 학교에 다니고 여러 가지 과외 활동을 많이 하고 나도 바쁘므로 그런 시간이 많지도 않다. 그러나 내 마음은 언제나 손자, 손녀에게 가 있고 조금만 안 보아도 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 모습이 마치 “아양 떠는 할머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가 온갖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이고 저들은 같이 사는 이모와 교회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모든 것에 너무 부족함이 없고 할머니의 사랑이 때로 귀찮기도 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온통 딸 집으로 향하는 일이 또 생겼다. 뉴욕에 사는 아들이 한 살 반이 된 아들을 이곳에 석 주 동안 맡겼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또 아기를 임신했고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서 석 주 동안 딸 집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두 명의 형과 누나가 동생을 극진히 위하고 두 고모들이 보살피지만 아직 아기인 꼬마가 낯선 생활에 처음에는 보챘지만 곧 모두가 너무 잘해 주고 많은 장난감에 즐겁게 지내게 되었다. 이 손자가 딸 집에 기거하면서 밤이나 낮이나 내 마음이 더욱 딸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 손자는 내가 가도 본척만척하고 반가워하지도 않건만 나 혼자 짝사랑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고모가 “할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시키고 형들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주저앉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두 고모가 교회의 여름 아카데미를 준비하느라고 바빠 내가 아이들을 이곳 백화점 안의 놀이터에 데리고 갔는데 아기가 설사를 해서 기저귀를 갈아주는데도 계속 설사를 하는데 치우면서 하나도 더럽지가 않다. 아마 다른 아기라면 돌아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왜 설사를 하는지 안타까워하며 어루만지고 기도해 준다.

  하늘의 비행기를 보면 꼭 쳐다보고 종알대는 것은 비행기를 타고 왔고 자기 부모가 비행기를 타고 올 것이니 더욱 기대를 하고 보는 것 같다. 요즘 새로 나오는 아이팟을 가지고 아빠와 공부를 해서 알파벳과 숫자도 다 안다. 3살 반 된 딸의 아들 막내가 의젓하게 제법 형 노릇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손자가 엄마나 아빠를 몹시 찾지 않는 것은 다행인데 자기가 꼭 끼고 다니는 제법 큰 장난감 개는 항상 찾고 조금이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울고 보챈다. 때가 묻을까 보아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사서 이곳에 하나 두고 자기 집에 하나 두었는데 잘 때나 깨어 있을 때에도 항상 끼고 다닌다. 개에게 엎드러져서 자기도 하고 꼬리를 물거나 꼭 끌어안고 사는 것이 참 불쌍한 마음이 든다. 부모는 자기를 사랑하지만 항상 자기 곁을 떠나 있고 인형 개만은 언제나 자기 곁을 지켜주기에 그런 것일까? 엄마나 아빠가 직장에 가면 으레 그럴 줄 알고 빠이도 하고 잘 헤어지건만 개 인형만은 꼭 끌고 다녀야 안심이 되는 것 같다. 하긴 그 개는 꼬집어도 때려도 물고 빨아도 아무 불평도 안하고 충성스럽게 아기 옆을 지켜주는 기사이기도 하니 의지가 되리라. 많은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아기는 부족함이 없고 같이 살지 않는 할머니를 생각지도 않겠지만 아기의 모습이 나를 부르기에 내 마음은 온통 아기에게로 달려간다. 너무나 귀한 내 아들의 분신인 이 손자가 뉴욕으로 돌아가면 이제 보고 싶어 병이 나지 않을까 싶다. 이 아기를 데리고 두 고모가 인도하는 학생부 수련회를 가서 내가 아기를 돌보는데 그렇게 따라다니던 고모를 안 따르고 “할미”라고 부르면서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나만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아기가 고모가 너무 바빠서 자기를 돌보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할머니를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은 12년 전 지난날의 글로 이제는 다 커서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들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어린 꼬마 손자, 손녀가 있는데 보고 싶다. 2살짜리 꼬마 손자는 자기 엄마가 일하러 갈 때에 창문에 매달려 막 울다가 엄마 차가 사라지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행여 나를 놓칠까 보아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너무 말을 잘 듣는다. 아이들도 어떻게 처세를 해야 하는지 다 아는 것이다. 이런 사랑스러운 손자들이 7명이고 손녀는 3명이다. 내가 목회할 때에 나의 세 아이들이 부모보다도 더 열심히 교회 일을 잘하더니 아들도 딸도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고 큰딸의 세 아이들이 엄마와 똑같이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너무 대견스럽다.

  그래서 나는 진액을 짜며 저들을 위해서 이 악한 세대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고 캄캄한 세상을 밝히 비추는 등대가 되기를 소원하며 내 속의 촛불을 켜고 밤을 지새우며 나를 태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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