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오지랖인가요? 아니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인가요?(1)" -시애틀한인소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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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칼럼] "오지랖인가요? 아니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인가요?(1)" -시애틀한인소셜칼럼

1947년 미국에서는 백인들이 우월하다는 사회구조여서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에는 흑인선수는 없었다.


잭 루즈벨트 로빈슨은 미국의 첫 번째 프로페셔널 야구선수로 미국의 메이저 야구 팀인 브루클린 다저 팀의 선수로 아프리컨 아메리칸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였다.


그의 번호는 넘버 42였는데 재키는 1947년부터 1956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의 멤버로 활약을 하였으며 1962년도에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또한 로빈슨은 미국 내의 인종차별을 없애는 데 크게 이바지함으로써 메이저 야구선수로는 유일하게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던 선수였기도 하였다.


재키 로빈슨이 처음 경기에 뛸 때 상대편팀은 물론 관중들과 일부 같은 팀조차도 그와 뛰기를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그 당시에 팽배했던 인종차별주의의 영향으로써, 그 당시에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때였던 것이다.


재키를 선수로 초대한 브루클린 구단주와 감독의 혁신적인 생각과 결정은 그때 당시에 거센 반발을 일으켰지만, 재키는 오랜 시간 동안 거친 반발과 야유 그리고 폭력에 맞서서 훌륭한 선수로서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재키는 1947년도에는 야구 신인상을 1949년도에는 내셔널리그 MVP를 거머쥐었으며 6번의 올스타게임 출전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어쩌면 재키 로빈슨의 야구선수로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미국 내에 거센 흑인 인권운동의 시작이 될 수가 있었다.

 

그때 당시에 미국의 사회에서는 흑인들이 타는 버스칸과 백인들의 좌석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백인들이 좌석이 모자라면 뒤쪽의 흑인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새로이 탄 백인들의 좌석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여야 했던 시대였었다.


재키는 다저스에서 뉴욕팀으로 트레이드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야구에서 은퇴했으며 은퇴 후에는 마틴 루터킹의 인권운동을 도와 함께 활약하기도 했으며, 재키에 이어 로자 파크스는 미국의 인권운동가로서 손꼽히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로자 루이스 파커스가 앨라배마 몽고메리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중간정류장에서 백인이 타서 자리가 없는 줄을 알게 된 백인운전사가 로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명하였으나 그동안 백인들의 횡포에 지치고 화가 난 로자가 자리를 양보하기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 일 때문에 로자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382일 동안 계속되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태로 이어졌고 곧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미 전역의 큰 규모의 저항 운동으로 번져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그 당시에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지역에서의 버스의 앞줄 네 줄은 백인 전용으로 설정이 되어있었고 흑인들은 뒤의 유색인종 칸에만 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버스를 많이 이용하던 흑인들은 앞자리가 비어있어도 앉으면 안 되던 사회였다

내가 왜 인권운동에 대해서 더 알아보게 되고 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금년내내 아니 겨울까지도 시애틀 다운타운지역 아니 전국적으로 일어난 블랙라이프 메터(Black life matter)에대한 관심 때문이었고 흑인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 마음이 더욱 미안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된 이유는 이들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사는 우리 유색인들이 또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지금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된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독립을 위해 희생한 우리의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의 대가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들이 잘살아갈 수 있는 결과인 것이다.

 

분명 우리 조상들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가 있듯이 미국에서 흑인들의 투쟁 역사가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 이민자들의 삶은 보장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이민자들은 흑인들에게 빚진 자들로서의 삶인 것이다. 


자유를 찾아서 투쟁하고 피와 땀을 흘려가며 쟁취를 해서 백인과 흑인이 다르지 않은 사람인 것을 세상에 알리고 백인들만의 우월주의 옷을 벗기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공화당도 민주당도 다 좋아한다.

 

그런데 45대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인격과 그의 인종적인 언어와 행동에 너무나 실망을 하고 가슴이 아파서 그가 대통령에 머무는 기간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매일 우스꽝스러운 그의 행동과 모습 그리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그의 저질스러운 언어에 실망이 되고 화가 나고 그의 행동에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한동안은 티브이를 꺼버리고 뉴스는 보지도 않았으며 혹시 잘못 켜서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나오면 티브이를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며 고민을 하다가 46대 대통령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며 선거운동에 참여를 하였다.


가장 신사적이고 민주적이고 바른 방법인 선거할 때 투표로 엉뚱하고 기가 막힌 인물인 사람이 사라지기를 기대하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왜 우리가 바른 사람, 바른 인격, 된 사람의 지도자를 선출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정말 도시락 싸갖고 다니며 설명을 하였다.


나는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 대통령을 참으로 존경을 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바른 행동 사람을 위한 배려 그의 현명한 판단력과 통솔력 그의 인격적인 유머 감각 지금도 생각해보면 레이건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속상했던 일 중의 하나가 늘 가던 피트니스가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특별히 시애틀지역에 겨울에는 거의 늘 비가 오기 때문에 밖에서 운동을 하는 일은 쉽지가 않아서 걷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그래서 직장을 마치거나 아니면 새벽 일찍이 직장을 나가기 전 거의 텅빈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의 시작이 경쾌했었는데 팬데믹으로 인하여 당분간 문을 닫은 피트니스센터는 오랜 기간 동안 문을 닫아걸어버렸다.


열흘 전부터 내가 멤버십을 갖고 있는 피트니스센터의 문을 열면서 미리 예약해 놓은 사람들만이 들어가서 운동도 할 수 있고 수영도 할 수가 있게 되었었다.


나 역시 부지런히 예약을 하며 피트니스를 애용하며 이참에 수영도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수영장도 예약을 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피트니스나 수영장도 조용하였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수양회를 갔는데 아마도 남이섬이라는 곳으로 그룹 수양회를 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중학생이고 오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교회의 수양회에 신나는 마음으로 따라가서 물가에 자리를 잡고 모두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장난을 치던 중 짓궂은 남학생 주로 어린 동생들이 내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지 못하게 위에서 누르고 물속에서는 내 발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는데 수영에 미숙하던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발버둥을 치며 물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건너편에서 바라보던 주일학교 선생님이 쏜살같이 달려와 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꺼내어 물을 토하게 하고 인공호흡을 시켜서 정신을 차리게 했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물과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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