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4월이 오면 사랑과 겸손으로 - 시애틀한인교육칼럼
독자 여러분께서 이 신문을 받아 드실 주말은 벌써 4월의 어느 날일 것이다.
4월하면 떠 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이 주말의 일요일은 기독교에서 부활절로 기념하는 최고의 명절 중의 한 날이다.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Easter라고 불리는 이 명절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뒤, 사흘만에 죽음에서 다시 산 날을 기념한다.
그래서 이즈음에 많은 미디어들에서 “He is risen”이라고 하는 말들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우리네 이민자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된 발음을 하나 지적하고 넘어 가자면, ‘risen (‘일어나다’라는 의미의 동사 ‘rise’의 과거 분사형)’은 ‘라이즌’이 아닌 ‘(히 이즈) 뤼즌’이라고 발음한다.] 즉,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셨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항상 부활절이 4월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해에는 4월 중순에 어떤 연도에는 3월 말에 부활절을 기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부활절은 전통에 따라, 춘분이 지나고 첫 만월이 지난 후의 첫 일요일을 정해 기념한다. 그러니 매해 날짜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4월이 되면 생각나는 다른 하나는 시인 엘리어트의 싯귀이다. T.S. 엘리어트가 1920년대 초에 그의 시집 황무지 1부에서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겨울의 눈 덮인 잠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한시적으로나마 잊혀지지만, 봄에 막 생명이 다시 살아 나려 꿈틀대는 그 움직임은 잔인할만큼 처절하다는 의미였을까?
(독자들도 아시겠지만, 기억을 되살리시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 시의 일부를 필자의 졸역으로 다시 읽어 보면: 사월은 더 없이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다시 살려 내고/ 옛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말라 터진 뿌리들을 봄비로 해갈시킨다.// 겨울엔 차라리 편안했었지/눈 덮인 대지는 우리의 생각도 덮고/가냘픈 생명의 끈은 마른 뿌리로 이어 주었었지) 이런 저런 문학 전공자의 하릴없는 상상이 이어지다가 다시 대입 카운슬러인 필자의 직업병이 도진다.
혹시 이 맘 때쯤에 제1지망 대학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고교생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가 조금쯤은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니겠지, 그 때는 지금처럼 대입 전선의 포성이 이리도 치열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또 다른 4월에 생각나는 일들 중의 하나는 위에 언급한 대입 합격자 발표이다. 올 해는 발표가 예년에 비해 좀 늦어 오는 4월 6일에 아이비 리그 대학들이, 4월 9일에 스탠포드가 합격자를 발표한다고 한다.
합격자들은 세상을 얻은 기분이겠지만, 꼭 자신이 특별하게 뛰어나 그리 되었다고 너무 티를 내지는 말자. 왜냐고? 스와스모어 대학과 버클리에서 사회 이론을 가르치는 배리 슈와츠 교수는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신입생을 가장 공정하게 선발하는 방식은 ‘제비 뽑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즘 하버드나 스탠포드 대학의 합격율이 약 5%대 미만이니 한 자리에 20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들이니 이들 중에서 누구를 뽑고 누구는 떨어트리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기보다는 그저 상황과 시간이 맞아 떨어진, 한마디로 운이 좋은 지원자가 합격한다는 설득력 있는 이론을 주장한다.
합격한 학생에게는 축하를, 제1지망 학교에서 불합격을 통보받은 지원자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위의 이론을 말함이 이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만 한가지는 분명히 전하고 싶다.
만약에 슈와츠 교수의 주장이 합리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합격한 학생들은 어떤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운이 좋아 다가오는 4년을 원하는 장소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한 어떤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몇 년 전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부부가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한 연설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멜린다 게이츠의 말: 빌은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잘 나가는 변호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당시엔 희귀했던 컴퓨터를 중학교 때 레이크 사이드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었고, 사업에서는 승승장구했고, …, 이 모든 것에 행운이 주어졌던 것이지요.
세상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사는 이들을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이 났어요. “그래, 내가 바로 저 사람처럼 될 수도 있었던 거야. 운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러니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야 해.”
하지만, 운을 탓하며 모든 것을 그저 물이 흐르는 대로 둘 수는 없는 것. 고랑을 치고 둑을 만드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한 뒤에 운을 논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다. (www.ewaybellev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