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옛날의 , 오늘의 -시애틀한인로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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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열모칼럼] 옛날의 <구주탄일>, 오늘의 <성탄절> -시애틀한인로컬칼럼

올해도 어느덧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탄절>을 아득한 옛날 제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일하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구주탄일>이라 불렀고, 오늘의 <교회>도 그 시절에는 <예배당>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구주탄일>을 무슨 까닭으로 오늘날에는 <성탄절>이라 부르고, <예배당>도 <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구주탄일>이라고 부르던 그 시절과 <성탄절>이라고 하는 오늘날과는 믿음의 분위기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옛날의 <구주탄일> 시절에는 가난했기 때문인지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였는데 오늘의 <성탄절>은 사치스럽고 들뜬 분위기만 느껴집니다.  

<구주탄일> 시절에는 옷깃을 여미고 거룩한 마음에서 조용히 그날을 기다렸는데 오늘의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기보다 선물과 파티에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장만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파티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고, 어린이들은 선물에만 눈독을 드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에서도 <구주탄일> 시절에는 화려한 장식이나 거창한 행사보다 성탄예배 위주로 조용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날 저녁에는 성탄예배를 드리고서 자정이 가까워지면 젊은 교우들로 구성된 찬양대가 교우들 집으로 찾아가 대문 밖에서 찬송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을 조용히 부르고서는 다른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날 밤의 이 심방찬미 행렬은 엄숙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잡담하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오직 길바닥에 깔린 눈을 밟는 소리뿐이었습니다. 두툼한 방한복이 귀하던 그 시에 추위서 떨면서도 이 행렬을 따라다니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간혹 우리를 불러들여 따끈한 팥죽이라도 차려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탄절>에는 지난날의 그 엄숙한 심방찬미 소리는 들리지 않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에 성대한 축제 분위기에 들떠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성탄예배가 끝나면 바로 진수성찬으로 친교식사를 마치면 다양한 게임을 하고, 가정에서는 친지들끼리 모여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며,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이 관례인가 봅니다. 젊은이들은 연인끼리 거리로 쏟아져 나와 네온불 밑에서 밤이 지새도록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보입니다.   

옛날의 <구주탄일>과 오늘의 <성탄절> 분위기를 믿음이 역한 제가 이렇게 피상적으로 단순비교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이에 대한 저의 의견을 감히 개진하고자 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구주탄일> 시절에는 성탄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기는 순수한 종교적 관행이 짙은 반면에 오늘의 <성탄절>에는 실리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조류에 휘말려 상업적 속물주의가 매우 진하게 풍기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저는 솔직히 오늘의 이 화려한 <성탄절> 시절보다 조촐한 <구주탄일> 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집니다. 특히 6.25전쟁으로 굶주리던 시절에 제가 다니던 천막 교회에서는 어려운 교회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목사님이 앞장서서 우리 젊은 교우들과 함께 막노동을 했고, 밤에는 불우 청소년들을 위해 호롱불 밑에서 야학을 개설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 인근에 신생원(信生院)이라는 전쟁 고아원이 있었는데, 이 고아원도 가난한 시절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자원봉사로 겨우 유지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봉사활동은 우리 교회 목사님의 사모가 중심이 되어 여전도회가 거의 도맡아 했습니다.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애기들을 씻어주며 돌보느라 말없이 구슬땀을 흘리던 이 현장이 바로 <행함의 믿음>으로 여겨져 입술로 행하는 100마디 설교보다 더 큰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에 와서 되돌아보면 가난하던 <구주탄일> 시절에는 교회에 대한 애착심이나 교우끼리의 친교도 오늘의 <성탄절> 시절보다 오히려 더 돈독한 것으로 여겨져 그때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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