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빗속에 다녀온 솔덕온천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빗속에 다녀온 솔덕온천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솔덕 온천을 다녀오는 날이다. 우리 선교교회 시온반 회원들은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소풍 가기 전 날 마음이 들떠 밤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장맛비였다. 27명이 교회 밴 2대에 타고 8시에 솔덕 온천을 향해 출발하였다. 출발할 때 담임 목사님이 장도(壯途)를 비는 기도를 해주셨다.


교회에서 I-5 고속도로를 달리는 데 비하고 차가 부딪치고, 도로 면의 빗물하고 마찰이 생겨 일어나는 뿌연 안개가 생겨 앞이 안 보였다. 고속도로는 전쟁터였다. 비는 장마로 변해 꾸준히 내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101도로로 진입하였다, 초록이파리들의 싱그러운 빛이 푸르른 5월이다. 꽃은 모두 지고 연록(軟綠)의 새잎과 새싹이 한창이다. 


5월은 역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의 계절이다. 이것은 나의 대학입시 국어시험 문제였다. 향기로운 풀과 우거진 나무 그늘이 꽃의 계절을 이기는 때란 뜻이다. 검은 초록색 상록수 틈에 끼어 피어나는 연록색 신록은 비를 머금어서인지 어둔 빛이 난다. 녹음 속을 뚫고 비를 철철 맞으며 차는 달려갔다.


포트 엔젤레스(Port Angeles)란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휴게소가 없어 이곳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러 화장실에 가고 차도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30분가량 달려갔다. 오른쪽에 크레센트 호수(Lake Crescent 초승달 호수)가 있었다. 이 호수는 제일 깊은 곳이 201m로 워싱턴주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고 올림픽산맥의 빙하 호수로 초승달의 모습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수가 굉장히 커서 차는 꼬불꼬불한 호반길을 따라 20분도 더 달려갔다. 


넓은 파란 호수면 위에 하얀 물방울이 빛을 발하며 떨어지는 장면이 장관이다. 

오른편에 큰 호수, 왼쪽엔 아름드리 원시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길가에 사슴 2마리가 서 있는 모습이 얼른 스쳐 지나갔다. 날렵한 몸매를 한 예쁜 사슴은 꼼짝하지 않고 한가로이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13km의 호반(湖畔)길을 노래를 부르면서 한참을 달려가서야 왼 쪽에 올림픽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 있고 101번 도로와 헤어졌다. 작은 인형의 집 같은 안내소에 빨간 옷을 입은 예쁜 젊은 아가씨가 올림픽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이 인형의 집에서 2.4마일(약 10리)의 오름길을 힘겹게 달려가 솔덕 온천에 도착했다. 


길 양편에 있는 원시림은 하늘을 찌를 듯이 삼베나무처럼 빽빽이 우거져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그 속에서 금방이라도 곰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올 것만 같았다.

교회에서 3시간 반(휴식 시간 포함)을 차에 시달렸지만 우리 노인회원들은 비교적 건강하였다. 차 안에서 김밥과 간식으로 요기를 한 후에 간단한 입욕 수속을 마치고 우리들은 서둘러 온천탕에 몸을 담갔다. 


비는 쉬지 않고 계속 내렸다. 뜨끈한 물(섭씨 40도)이 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미끈미끈한 촉감이 달걀 썩은 냄새와 더불어 여기가 몸에 좋다는 솔덕 온천이란 것을 실감케 하였다. 온몸을 온천수에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니 한국의 도고온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였다. 달걀 썩은 냄새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냄새는 두 곳이 비슷하지만, 미끈미끈한 촉감은 이곳이 훨씬 더 했다.   


이 솔덕 온천은 야외 온천탕 3곳과 풀장 1개로 되어 있다. 15가지의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중 두 가지 성분이 아주 유명하다. 즉 피부를 촉촉이 매끄럽게 감싸는 것은 실리콘(규토)이고, 달걀 썩은 냄새가 곧 유황 성분인데 중간에 맹물을 섞지 않는 질 좋은 원액이라고 한다, '곰국'으로 치면 물을 타지 않은 진국인 셈이다. 그래서 솔덕 온천이 유명하다. 


이상하게 황 냄새를 맡고 부드러운 약물에 몸을 푹 담그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 전체가 이완되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1880년대 '데오 도어 모르처'란 사람이 이곳에서 원주민들을 간호해 주었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원주민들은 마술의 물(magic water, 지금의 솔덕)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한다. 피부병, 관절염, 위장병 등에 탁월한 효험이 있어 '마술의 물(magic water)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르처는 그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사람들이 와서 노천에서 마술의 물로 치료받도록 하였다. 하늘을 찌르는 원시림 사이에서 보슬비가 소리 없이 고요한 야외 온천탕 수면에 쉬지 않고 내렸다. 아랫도리는 뜨거운 탕 속에 푹 잠겼는데 어깨와 머리, 목은 싸늘한 비를 맞으니 온탕과 냉탕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뜨거운 온천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우윳빛 아지랑이가 꿈속같이 뿌옇다. 그저 물에 둥둥 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하였다. 빗방울이 커진다. 비가 온천물 위에 떨어지면서 수많은 둥근 원을 그린다. 원은 여러 곳에 방울이 되어 하나의 예술품을 만든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온천을 마치고 샤워하지 말고 그냥 가라 한다. 약효를 간직하기 위해서다.       


페더럴웨이의 식당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목사님이 무사히 야유회를 마칠 수 있게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초등학교 학생이 소풍가는 기분으로 다녀온 솔덕 온천이다. 비록 비가 내리는 악천후이었지만 5월의 신록을 뚫고 온천에 가서 냉탕과 온탕을 처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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