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칼럼] 손절할 사람
인생을 살면서 보내야할 사람을 제때 보내지 못하고 모든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면 더 크게 훼손되는 법이다. 가족은 물론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일 수는 없다.
특히, 우리 정서에는 모든사람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좋을때까지 끌고가야한다는 잠재적 교육이 있기때문에 손절에 어색하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않고 모든이를 이해하고 유지하려고 들면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스트레스를 줄 뿐이다. 이보다 나쁜 관계는 없을 것이며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실수나 조언 등을 반복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좋은 말만 해야한다.
언제나 친절하고 웃으면서 다 맞다고 하고 무시하면된다. 잠깐 볼 사람으로 여기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면 같이 있어야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조율하고 타협을 계속적으로 유지해야하는 손절할 수 없는 관계도 있다.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는 이유도 이와 흡사할 것이다.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싸우고 타협하려든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가 아닐까.
나를 구지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손절이 답이다. 서로 다르다는 일종의 멈춤이라고 생각한다면 손절이 반드시 인간관계에 흠집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나 손절할 수 없다. 예를들어 만나면 다른이들을 비난하고 불평 불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과 오래 대화하다보면 나의 에너지가 다 뺏기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이런사람과는 손절해야한다. 만나서 스트레스를 오히려 주는 관계는 나의 심리적 영역까지 치명적일 수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멀리한다면 남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반문하기도 한다. 반드시 끈어야하는 손절도 있지만 수위를 조절해서 관계를 유지하는 일시적 손절도 합리적인 방법이다.
자신이 아무리 훌륭한 인격체라고 해도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나를 선호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면 심리적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남의 기분을 맞추며 사는 인생보다 내 자신의 기분을 존중하며 사는 지혜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나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손절할 사람을 구분 짓는다는 것은 내 자신의 한계의 선을 구분짓는 일종의 과정이라고 여겨야 건강한 손절도 이뤄질 수 있다.